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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맹자 '중심면목'

끝없이 반목 일삼는 정치인들 입으로만 'YS 유지 계승' 외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많은 사람의 애도를 받으며 지난 26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김 전 대통령은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보다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기틀이 됐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은 전격적인 삼당 합당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었다. 또 외환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임기 말 전 국민을 미증유의 고통에 몰아넣은 구제금융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인간은 신처럼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한평생 살다 보면 자연히 공과 과가 구분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김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인이 남긴 자취 중 계승해야 할 것은 계승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슬기로운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고인은 죽기 전 통합과 화합의 바람을 나타냈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와 사회 각 분야를 돌아봐도 통합과 화합의 방향보다 분열과 대립의 양상이 강화되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무한대결의 자세를 드러낸다. 그 결과 과거의 묵은 사회 현안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현안도 갈등과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맹자'를 보면 사람이 스스로 변화를 일궈내는 일화가 나온다. 맹자 당시는 매장이 일반적인 장례였다. 이전에는 시신을 계곡이나 들판에 두는 풍장(風葬)이 일반적 장례였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버이가 돌아가시자 풍습에 따라 풍장을 지냈다. 풍장을 지낸 뒤 그는 아무런 불편과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사람이 길을 가다가 어버이를 풍장한 곳을 지나치게 됐다. 여우와 살쾡이가 시신을 훼손하고 파리와 모기가 시신에 들끓고 있었다. 그는 그 광경을 목격하자 이마에 진땀이 나고 훼손된 시신을 차마 눈뜨고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삼태기와 삽을 가지고 와 어버이의 시신을 흙으로 덮었다. 그가 어버이를 풍장했을 때 이 장면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는 왜 어버이를 풍장했다가 지금에서야 매장했을까. 맹자는 그의 몸에 난 땀의 의미를 풀이했다. 이마에 진땀이 난 것은 남들이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어버이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 것이다(부차야·夫也, 비위인차·非爲人, 중심달어면목·中心達於面目).



자식이 풍장을 지낸 어버이의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보고 '관습을 따랐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순간 마음이 불편했을 수 있지만 흙으로 어버이의 시신을 덮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버이를 진정으로 아끼는 만큼 자식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많은 정치인이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고 장지에 동행하며 고인의 뜻을 기리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짐은 그냥 다짐으로 끝나고 만다. 이것은 자신이 고인의 뜻에 따라 살고 있는지 진정으로 따져보지 않고 그냥 빈소와 장지를 물리적으로 다녀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 말로만 그치니 실천으로 옮겨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고인의 뜻을 기리겠다고 하더라도 그 말은 말에 어울리는 행동을 낳지 못하고 허공에 흩날리는 소리에 그칠 뿐이다. 적의를 드러내는 굳은 얼굴보다 사랑의 속마음이 얼굴에 묻어나는 중심면목(中心面目)의 사람이 그립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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