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건륭제 때 화신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학자 군주였던 건륭제의 마음을 살 줄 아는 똑똑한 공무원이었다. 당시 청나라 황제의 통치 방식은 ‘만기친람’(萬機親覽), 즉 모든 것을 스스로 관장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기에 모든 자료를 낱낱이 보고 주도면밀하게 처리하는 황제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는 군주들은 많았다. 건륭제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왕명을 출납하는 업무를 맡은 화신은 임금이 기분좋게 하기 위해 온갖 꾀를 썼다. 대표적인 사례는 일부러 지방관들의 장계(狀啓)에 오자를 집어넣거나 논리가 맞지 않은 보고서를 올리며 군주가 ‘지적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다. 중간에 끼어 있는 관료들은 생각지도 않은 일을 하달받아 진땀을 뺐지만, 고령의 건륭제는 자신이 ‘언제나 현역’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어깨를 으쓱했다. 화신은 기분좋은 순간에 상사의 곁에 있는 부하가 출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의 관직은 고속으로 높아졌다. 그의 직위는 황제의 근위대인 어전시위로 출발해 대학사, 재무장관에 해당하는 호부상서를 거쳐 국무총리 격인 의정대신(議政大臣)에 이르렀다. 그러나 관운만 따른 게 아니었다. 화신은 각지에서 황제에게 올라가는 진상품들을 감정하고 유통하는 업무를 맡았다. 우리나라 군사정권 시기의 실권자였던 어떤 사람도 ‘떡고물이 떨어지니 조금 먹었을 뿐’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화신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황제에게 올라가는 진상품의 4분의 1을 가로챘다. 그리고 매관매직에 본격적으로 나서 그로 인해 청나라 조정의 기강이 해이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건륭제는 화신의 비위를 캐려 들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보상을 누린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황제 자신은 딸인 효장공주와 화신의 아들을 혼인시키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건륭제가 죽고 그 장남인 영염(永琰)이 즉위해 가경황제가 되었다. 부패의 근원인 화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수사권을 발동해 화신의 집을 덮쳤다. 그리고 각종 가산을 몰수했다. 화신의 재산은 8억 냥에 달했다고 한다. 청나라 조정의 10년 예산이었다. 청나라는 1894년 일본과의 전쟁에 패해 2억 냥의 배상금을 물었고, 국수주의 운동이었던 의화단(義和團)으로 인해 열강의 주둔지에 발생한 피해를 보상하느라 4억 5,000만 냥 가량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화신의 개인 재산은 국가 차원의 배상금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니 얼마나 그가 ‘시정잡배’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화신과 같은 모리배(謀利輩)가 중국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조선 말기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로 집권하던 시절, 권력자보다 더 무서운 그의 애첩이 있었다. 그녀는 나주 양씨로 원래 기생이었으며 하옥(荷屋) 김좌근(金左根)의 ‘세컨드’였다. 그런데 문제는 권력자인 김좌근 본인보다 양씨가 더 권세를 부렸다는 점이다. 그녀는 김좌근의 손님들에게 따로 뇌물을 받았으며,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각각 임관할 지방을 정해주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자기 나름대로 국정을 이끌어 나가려 했던 김좌근도 황음(荒淫)에 빠져 양씨에게 결정을 일임하기도 했다. 세간에서는 그녀의 본관과 김좌근의 정승 지위를 빗대어 ‘나합’(羅閤, 나주합하라는 의미. 합하는 정1품 이상의 고위관료를 가리키는 경어)이라고 불렀다. 그녀 역시 남자는 아니지만 확장된 의미의 모리배라고 볼 수 있다.
‘모리배는 나라에 이롭지 못하다’는 명제는 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모리배가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건 아니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애교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얼마 전 노영민 의원이 자신의 북 콘서트장과 의원회관에 카드 리더기를 설치해 놓고 사람들이 ‘시집’을 결제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해 논란에 휩싸였다. 한때 장남을 무리하게 국회 부의장실 4급 비서관으로 천거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그 사람이다. 대중은 본인의 지위와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한 ‘갑질’이라며 분개했다. 분명한 건 그가 화신이나 나합 같은 부류의 모리배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 범주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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