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보험 경쟁력 강화안은 업계가 놀랄 만큼 파격적인 자율화 방안을 담고 있다. 순이익이 악화했다며 아우성을 친 보험사의 요구 대부분을 받아들인 것이다.
보험사의 순이익이 줄어든 것은 2000년대 이후 저가 상품을 팔아치운 보험사의 탓이지 소비자 탓은 아니다. 그런데도 감독 당국은 보험사의 주장을 반영하고 소비자의 요구는 담지 않았다.
지금은 보험상품이 출시되기 전 감독 당국의 사전 심사를 받는다. '세 번 받는 보험'처럼 무조건 보험금을 받는 듯이 포장한 상품이름을 '세 번 받을 수 있는 보험'으로 고치는 교정이 이 단계에서 일어난다. 그나마도 1년에 1,700여건이나 되는 사전 심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진다는 비판이 나오던 터다. 이제는 그마저 없어지고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표준약관 폐지도 아이러니다. 복잡한 보험상품을 계약하는 소비자가 최소한 보장받아야 하는 내용을 담은 표준약관 대신 보험사가 상품별로 약관을 정한다. 현재 표준약관에 따른 상품도 깨알같이 적힌 약관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민원이 들끓는다.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상품을 팔아 문제라는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이롭게 약관을 고치기보다는 불리하게 바꿀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감독 당국이 그걸 일일이 잡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감독 당국은 인터넷을 통한 보험상품 비교 공시를 강화하고 인터넷 판매를 늘려 소비자 선택권을 높이겠다고 밝혔지만 역부족이다. 아직도 보험상품의 65%는 보험설계사에 의해 팔린다. 오히려 소비자 보호 통제에서 벗어난 법인대리점(GA) 소속 보험설계사 문제가 커지는 상황이다. 보험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보험설계사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는 32개 직업군 중 31위에 해당할 만큼 낮고 소비자의 보험 계약 절차에 대한 이해도는 100점 만점에 30점에도 못 미친다. 결국은 인터넷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금융 당국은 자율화가 보험사의 경쟁을 높여 결국에는 소비자에게 유리한 시장이 조성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자면 보험사의 권한을 높인 만큼 책임도 지워야 맞다. 침묵하고 있는 보험 업계는 자율적인 소비자 보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보험사에 매기는 과징금을 정부가 가져갈 게 아니라 돌려달라는 소비자의 요구를 이제는 고려할 때다. /경제부=임세원기자 w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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