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의원의 부친상을 계기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정치 지형도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틀 간 이어진 조문 행렬의 물 밑에서 은밀하게 작동한 ‘조문의 정치학’은 앞으로 당청 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풍향계 역할을 했다. 유 의원 부친의 장례에서 드러난 여권 내 역학 구도의 핵심 포인트를 짚어 봤다.
우선 유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박 대통령은 9~10일 마련된 빈소에 끝내 화환을 보내지 않았다. 청와대의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김현숙 고용복지수석이 보낸 조화가 빈소 한 가운데에 자리 잡으면서 박 대통령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사전에 조화를 사절한다는 공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 측의 해명이지만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또 한 번의 ‘정치적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 나왔다.
당청 갈등으로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던 유 의원은 최근 부쩍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이 잦아지면서 대통령과의 대립각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데 이런 둘의 현재 관계가 ‘조문 정치’를 통해 표출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틀 간 정무수석을 포함한 단 한 명의 청와대 관계자도 빈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 같은 분석에 설득력을 더했다.
두 번째는 대구·경북(TK) 지역의 ‘물갈이론(論)’이다. 지난 8일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청와대가 물갈이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대구 동구갑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정 장관이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 장관이 사의를 표한 당일 유 의원 부친의 빈소에서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이 “TK에서 물갈이를 해서 ‘필승 공천’ 전략으로 가야 한다”며 “안 그러면 수도권 민심에까지 역풍이 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실었다.
마지막으로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원 원내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둘러싼 여권의 갈등 국면에서 확실한 친박계 라인으로 입장 정리를 한 모습이다.
반면 김 대표는 여전히 위태위태하다.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소신으로 당청 갈등을 주도했던 김 대표는 역사 교과서 공방으로 출구전략 마련에 일정 부분 성공했으나 비박계 수장으로서의 리더십에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문 마지막 날인 9일에도 많은 정계 지도자들이 빈소를 찾아 향후 여권 내 권력투쟁의 핵심 인사가 될 유 의원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을 증명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이날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께서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유 의원을 질타하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박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유 의원처럼 능력 있고 소신 있는 정치인을 보듬고 끌어 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나윤석기자 nagij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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