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할이 '검은 수염'이 아니라 '해적1'이라고 해도 '팬'의 촬영에 응했을 거예요. 좋아하는 감독과 일할 기회를 얻는 건 어려운 일인데, 훌륭한 대본에다 조 라이트 감독과 작업한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죠. '검은 수염'에 대한 감독의 해석도 마음에 들었어요. 어른들이란 아이들 눈으로 볼 때 무섭기도 하지만 우스운 면도 있고, 때로는 너무 변덕스럽죠. 예측불허 '검은 수염'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 휴 잭맨(사진)은 1일 일본 도쿄 페닌슐라호텔에서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평범한 소년이던 피터가 네버랜드 최고의 영웅 '팬'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영화 '팬(8일 개봉)'에서 악역 '검은 수염'을 연기했다. 원작 동화 '피터 팬'에서는 단 한 줄 언급되는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어린이들을 납치, 광산에서 부려 먹는가 하면 요정 왕국을 파괴하려고 하는 완벽한 악역이자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비중 있는 인물로 나온다. 제작진들의 빛나는 상상력으로 탄생한 이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휴 잭맨은 삭발까지 감행했다. 그는 "처음에는 딸까지 어색해하며 안기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내 머리 만지는 걸 좋아하더라"며 삭발 경험에 대한 감상을 털어놨다.
이날 기자회견은 '팬'의 연출을 맡은 조 라이트 감독과 주역 '피터 팬'을 연기한 13살의 호주 소년 리바이 밀러도 함께 했다. '어톤먼트' 등 진지한 영화로 사랑을 받은 조 라이트 감독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 '팬'을 연출한 것은 다소 의외다. 그는 "내가 아빠가 되고 아이가 생기니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엄마와 아이들 간의 놀라운 사랑도 얘기하고 싶어 '팬'을 연출하게 됐다"고 했다.
원작 동화와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이디어는 원작에서 따 왔지만 스토리 전개나 캐릭터는 완전히 재해석한 작품"이라며 "원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건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환상적인 분위기였기에 그 부분은 가장 닮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영화 속 네버랜드를 구상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감독은 "상상력이란 원래 시공간을 벗어난 것이라고 본다"며 "네버랜드 또한 시공간을 벗어난 꿈 같은 공간이기에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있었을 법한 물건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너바나의 음악을 트는 조합으로 독특한 장소를 만들려고 했다"고 부연했다.
이들은 한국 배우 나태주에 대한 감상도 말했다. 나태주는 네버랜드 원주민 영웅 '과후'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휴 잭맨은 "영화에서 '과후'와 '검은 수염'이 싸우는 장면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그런 장면이 있었다면 내 이미지가 크게 망가졌을 것"이라며 나태주의 액션을 극찬했다. 조 라이트 감독 역시 "태주는 연기력과 무술 실력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친구로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고 말했다. /도쿄=김경미기자 km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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