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망나니 도사(전우치), 남파 공작원(의형제), 탐관오리(군도), 철부지 애 아빠(두근두근 내 인생)….
필모그래피를 살짝만 들여다봐도 연기한 캐릭터들의 면면이 참 다채롭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중들의 관심은 그의 연기적 변신보다는 외모적 변화에 줄곧 쏠려 있었다. 배우 강동원(34·사진)의 이야기다.
5일 개봉한 새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도 가장 큰 이슈는 다름 아닌 배우의 옷 태다. 가톨릭의 구마(驅魔·귀신을 쫓는 일) 의식이라는 독특한 소재도, 배우 김윤석과 두 번째로 맞춘 연기 호흡도 '강동원의 사제복'에 비하면 화제성이 떨어진다. 배우로서 심란할 법도 한데 그는 외려 담담했다.
"그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그래도 영화를 통해 사제복 이상의 것을 보고 느끼신다면 더 기쁠 것 같아요."
무심한 말투에선 언뜻 자신감이 내비쳤다. 그럴 것이 영화에는 강동원의 사제복 말고도 즐길 거리가 많다. '엑소시즘'이라는 서양의 종교의식을 한국 영화에 가져온 담대함도 인상적이거니와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배우들의 연기 호흡은 특히나 좋다. 김윤석(김 신부 역)이 중심을 잡고 강동원(최 부제 역)이 이야기를 변주해가는 가운데 박소담(악령이 깃든 소녀, 영신 역)이 결정타를 터뜨린다. "막상 골을 넣은 사람은 소담이"라고 추켜세우는 강동원의 말이 결코 빈 말은 아니다.
배우 스스로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했다. 극 중 사용하는 라틴어와 독일어, 중국어 대사는 얼마나 달달 외워댔는지 촬영 종료된 지 6개월이 넘은 지금도 줄줄 읊을 정도. 캐릭터를 탄탄하게 구축하기 위해 가톨릭의 역사를 공부하는 한편 실제 구마 의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샅샅이 찾아봤다. 종교영화는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대충 날림으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모든 행동에는, 하다못해 초에 불을 하나 붙이는 것에도 의미가 있더라구요. 그걸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분명 차이가 있겠죠. 이를테면 구마 의식을 할 때 최 부제가 허공에 십자성호를 여러 번 긋는데 사실 이 행동은 강복(복을 내려주심) 의식에서만 한다고 해요. 하지만 구마의식에 정해진 룰이 있는 건 또 아니거든요. 그런 부분을 서로 알고 있으니 영화적으로 보기가 괜찮은 액션은 한번 해보자는 것도 좋겠다고 판단한 거죠."
개인적으로도 흥미가 있는 주제에 공부까지 많이 했으니 속편에도 욕심이 생긴다. 실제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소재가 독특해 시리즈로 가도 괜찮지 않느냐는 평도 나온다. "1편이 잘 돼서 속편도 찍고 싶어요. 그때는 부제가 아니라 사제겠죠. 보조 사제를 고른다면 '천만 요정' 오달수 선배님이 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웃음). 선배님이 나오시면 장르의 컬러가 코미디로 확 바뀔 것 같은데 그것도 꽤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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