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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중앙은행들이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앞다퉈 미국 국채를 팔아치우고 있다. 특히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인 중국의 매도속도는 투매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신흥국들의 매도세 못지않게 안전자산 수요가 몰리면서 수익률 변동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현지시간) 주요 신흥국 중앙은행이 최근 1년 사이 미 국채를 기록적으로 처분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동안 미 국채를 대거 사들여온 중국·러시아·브라질·대만 중앙은행이 이례적으로 물량을 대거 내놓았다고 WSJ는 덧붙였다.
도이체방크 집계에 따르면 미국 외 국가에서 지난해 8월부터 올 7월까지 12개월 동안 처분한 만기 1년 이상 미 국채는 1,230억달러(약 142조5,692억원)어치에 달했다. 이는 집계가 시작된 1978년 이후 순매도 규모로는 최대이며 이전 1년간 270억달러어치 순매수한 것과도 대비된다.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이자 현 SLJ매크로파트너스의 스티븐 옌 매니징파트너는 "지난 10년간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미 국채 매입은 장기 국채금리를 억누르는 데 일조했지만 이제 반대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신흥국은 대대적인 무역흑자와 원자재 붐 덕분에 보유외환을 대거 늘렸다. 2013년 1월까지 1년 동안 신흥시장 중앙은행들의 미 국채 매수 규모는 2,300억달러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세계 경기 둔화와 원자재 약세, 미국 금리 인상 움직임이 유발한 달러 강세로 신흥국에서 자본이 대거 빠지며 사정이 달라졌다고 WSJ는 지적했다.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자본유출에 따른 자국 통화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보유외환을 내다 팔고 자국 통화를 사들이는 환율방어에 나서면서 미 국채 매도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특히 중국이 최근 몇 달간 가장 적극적으로 미 국채 매도에 나섰다. 중국의 미 국채 매각은 8월11일 인민은행의 갑작스러운 위안화 평가절하가 기폭제였다. 평가절하 이후 위안화가 계속 하락하자 당국이 환율방어에 나서는 과정에서 미 국채를 대거 내다 팔기 시작했다. WSJ는 인민은행 소식통을 인용해 8월에만도 위안화 방어를 위해 1,200억∼1,300억달러가 투입됐을 것으로 추산했다.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인 중국은 지난해 7월 기준 보유 미 국채가 2013년 11월 대비 76억달러 줄어든 1조2,410억달러를 기록했다.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루블화 가치 방어를 위해 미 국채 보유분을 줄였고 노르웨이도 저유가 충격 속에 가지고 있는 미 국채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신흥국들의 매도에도 국채 수익률 급등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2.061%(7일 기준)로 지난해 말의 2.173%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3년 말의 3.03%와 비교하면 1%포인트 가까이 낮다. 신흥국들의 매도세 못지않게 미국 기업과 금융기관 및 일부 해외 중앙은행이 계속 미 국채를 매입하는 상황으로 인도 중앙은행은 7월 말 기준 1,163억달러를 보유해 1년 전보다 366억달러나 늘렸다. 미 국채 매도가 신흥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키워 오히려 안전자산인 미 국채 수요를 부추기며 국채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일부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미 국채를 팔아치우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투자사인 페이던앤드라이절의 제임스 사니 선임 파트너는 "중국이 (미 국채를 더 처분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당장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중국이 신중하게 움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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