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쭉빵빵 여성들 속에서 고달픈 ‘66사이즈’
삭스는 경쟁률이 100만대 1이라는 런웨이 편집장의 비서 자리를 꿰차기는 했으나 보스로 모시는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성질머리가 고약하기 그지없다. 미란다는 비서인 삭스를 종 부리듯 마구 대한다. 새벽 커피 심부름은 기본이고 애완견 돌보기에 보스의 쌍둥이 딸까지 챙기게 한다. 오죽하면 직원들이 미란다를 일컬어 악마나 다름없다고들 수군댈까.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보스의 전화에 삭스는 사생활도 연애도 누릴 자유가 없다. 그것도 모자라 66사이즈 몸매에 대한 인신공격에다 옷맵시가 촌스럽다는 핀잔까지 듣자니 삭스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천재적 두뇌에 피나는 노력으로 환골탈태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삭스는 변신을 결심한다. 몸매는 44사이즈로 줄이고 패션에 대한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흡수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패션의 ‘패’자도 모르던 삭스는 매력적인 커리어우먼으로 환골탈태한다. 천재적인 두뇌에 피나는 노력이 더해진 결과다. 삭스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악천후에 밤 10시의 캄캄한 암흑 속이라도 보스가 항공편을 마련하라면 비행기 한 대 쯤은 척하니 섭외해내는 능력자로 탈바꿈했다. 그 뿐 아니다. 보스가 끔찍하게 사랑하는 쌍둥이 딸들이 출간하지도 않은 ‘해리포터’ 원고를 구해달라고 떼를 써도 4시간 안에 어김없이 이행하는 놀라운 능력까지 과시했다.
악마 같은 보스 미란다는 세계 패션계에선 ‘여왕’으로 불린다. 그녀는 워커홀릭 상태이며 완벽만을 추구한다. 따라서 미란다가 주관하는 편집회의는 공포의 도가니다. 런웨이의 직원들에겐 ‘예스(yes)’만 허용될 뿐 질문도 반문도 가능하지 않다. 어쩌면 이런 치밀함과 악독함이 미란다로 하여금 그처럼 오래도록 전 세계 패션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게 만든 비결이었지도 모르겠다.
#미란다가 가장 애용하는 브랜드는 ‘프라다’
‘패션 여왕’ 미란다가 가장 애용하는 패션 브랜드는 프라다이다. 영화 제목 ‘악마(미란다)는 프라다를 입는다’ 또한 여기서 착안됐을까. 여하튼 영화에서는 프라다 외에도 숱한 명품 브랜드들이 등장한다. 아르마니·발렌티노·샤넬·베르사체·캘빈클라인·에르메스·돌체·디오르 등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요즘 세계 패션계에 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세계경제의 패권을 양분하고 있는 중국의 소비 트렌드가 프라다·아르마니 등 명품브랜드에서 SPA(제조·유통 일괄)브랜드로 바뀌면서 비롯된 현상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 프라다 매장은 지난해 49개에서 올해 1·4분기 33개로, 아르마니는 49개에서 44개로 줄어 급격한 퇴조를 보이고 있다. 반면 유니클로·H&M·자라 등 SPA브랜드는 올해 중국내 매장 수가 최대 100개 까지 늘어날 전망이어서 급팽창하는 분위기다. 전 세계 패션 소비의 판도를 쥐락펴락하는 중국인들의 급격한 변화에 패션업계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중국은 얼마 전 위안화를 기축통화에 편입시키며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지 않았나. 과연 ‘악마(중국인)는 유니클로를 입는다’는 얘기가 나올만하다.
#악마(중국인)는 ‘유니클로’를 입는다?
여하튼 기획·생산·유통·판매를 일원화한 SPA브랜드의 가격 메리트가 명품 브랜드의 세력을 압도하면서 전 세계 패션산업의 판도 변화가 한층 탄력을 받게 생겼다. 이 흐름과 더불어 값이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베블렌 효과’도 패션시장에서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될 판이다.
국내 패션업계에서도 SPA브랜드의 기세가 드높다. 일본계 SPA브랜드인 유니클로는 지난 회계연도(2014년 9월~2015년 8월) 한국시장에서 매출 1조1,169억원을 달성했다. 한국 패션시장에서 연 매출 1조원을 넘은 브랜드는 유니클로가 처음이다. 매출액 증가율도 24.7%에 달해 ‘폭풍성장’이라 할 만하다. 반면 삼성물산의 토종 SPA브랜드인 에잇세컨즈는 막대한 적자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서현 사장 국내 ‘패션 여왕’ 등극
이달 초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이건희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마침내 패션 비즈니스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국내 ‘패션 여왕’ 자리에 등극한 셈이다. 하지만 패션업계 상황이 이렇듯 열악하니 이 사장의 어깨가 무거울 듯하다. 부디 에잇세컨즈를 앞세워 중국 스파 브랜드 시장에 깃발을 꼽고야 말겠다는 그의 당찬 포부가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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