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에서 한국인에 대한 평판은 대체로 근면·성실로 대변된다. 1960~197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들의 인내심과 끈기에서 받은 인상이 40여년 세월 동안 고스란히 굳어진 덕분이다. 독일축구협회(DFB)에서 유일한 한국계 책임자(디렉터)인 이경엽(40·사진)씨 부모도 파독 광부·간호사였다.
최근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제18차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참석 차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한 그는 서울 테헤란로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대회 개회식 후 기자와 만나 "독일에서는 물론 독일축구협회에서 인정받는 데 한국인임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유럽국가 축구협회에도 한국인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어릴 적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스포츠경영과 유소년 팀 매니저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르트문트 출신 교포 2세인 그는 1990년대 말 대학 축구선수로 3부리그와 베를린 프로축구팀 헤르타BSC 2군에서 뛰다가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스포츠비즈니스 분야로 눈을 돌렸다. 2005년 포츠담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2008년 축구협회에 입문했으며 현재 내년 7월 처음 열리는 유럽 19세 이하 챔피언십 토너먼트대회를 기획·총괄하고 있다.
그는 "4년 넘게 후원업체 유치부터 대회운영까지 도맡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이번 대회를 꼭 성공적으로 이끌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회에서 상위 5개팀은 오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대회 유럽팀으로 출전기회를 얻는다. 그만큼 이 디렉터가 갖는 기대도 크다. 그는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국가대표팀의 경기준비를 뒷바라지했다. 쾰른·레버쿠젠 지역 선수 숙소에서 2주 이상 한국선수단과 함께 합숙하기도 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16강 탈락으로 모두 상심이 컸지만 한국팀을 위해 준비하고 응원하는 동안 즐거웠다"며 "종종 한국축구협회 관계자들이 독일협회를 방문하는데 앞으로 한국-독일 축구계 간 협력·교류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유럽 스포츠경영·행정 분야 미래가 밝다고 전했다.
현재 프랑크푸르트 아카디스대에서 스포츠마케팅학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독일 전국에 축구클럽만 2만5,000여개에 달할 만큼 스포츠시장 성장성이 매우 크다"며 "유럽 시장에 관심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라면 이론적 공부의 한계를 넘기 위해 유럽에 꼭 와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디렉터는 베를린 한인회장을 지낸 부친을 비롯한 한인 1세대들의 헌신이 점차 잊혀지고 있는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한인 1세대들이 역경을 딛고 이국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조국 경제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던 점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또 그 후세대들도 현지에서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고 전문분야에 진출해 위상을 높이는데 힘쓰고 있다는 점을 한국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곧 독일인 아내와 아들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한 그는 "한인차세대대회처럼 세계 각국의 한국인들이 서로 만나 생각을 나누고 배우며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만들어지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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