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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19> 학교 이데아 (2) 국정 교과서 논란이 간과한 것





대학 때였다. 오랜만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법대에 진학해 사법 시험을 준비하는 A, 간호대에 가서 백의의 천사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B, 철학과 공부를 하며 현재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복수전공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C 등 다양한 동기들이 모였다. 그런데 그 중 C는 유난히 자신의 당시 상황에 퍽 불만이 많아 보였다. 그 이유는 ‘그놈의 수능 성적’ 때문이었다. 원래 C는 고교 때 공부를 제법 잘하는 친구였다. 문과에서도 국어, 영어, 수학을 고르게 잘하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모의고사나 내신 때마다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등급도 대부분 1~2등급 이상이었다. 그러나 국사·근현대사 같은 암기과목들 문제였다. C에게 역사는 드라마나 영화로 보면 정말 흥미진진한 것이지만 교과서와 문제집으로 보면 지겹기 짝이 없는 스토리에 불과했다. 왜 오늘날을 사는 자신이 사색당파(四色黨派)와 일당전제(一黨專制)를 공부해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결국 흥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던 C의 성격 탓에 사회탐구는 언제나 4등급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외워야만 하는 역사 과목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C는 자신이 원래 가려던 학교보다 한참 수준을 낮춰서 서울 시내에 있는 모 대학에 입학했다. 사실 누군가는 그 학교도 썩 괜찮은 곳이라고 만족할만 하지만, C와 그의 부모님에게는 정말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 C의 첫 대학생활은 정말 우울했다.

그러던 어느날 C는 학교의 교양 수업 중 한국 문화와 관련된 강의를 듣게 됐다. 부교재로 한국 역사를 다룬 몇몇 학자들의 책과 논문을 묶은 자료집을 읽게 되었는데 웬걸, 자기가 옛날 정말 지루해하고 힘들어했던 역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교과서 속 역사는 때때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특정 학파의 주의 주장에 의해 왜곡될 수도 있는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 C는 대학에 가서야 역사는 쓰여지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 달라질 수 있고,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 합의(合意)에 의해 만들어 질 수도 있는 것임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C는 억울한 감정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하기 전엔 누구도, 어떤 교과서나 참고서도 그런 접근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교육부는 지난 12일 2017학년도에 사용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할 것을 행정 예고했다. 명칭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다. 교육부는 산하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 교과서 개발을 맡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C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내가 보기엔 현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국정화 기조는 옳으냐 그르냐의 차원을 넘어서 그 자체로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제한적이나마 다양성이 보장된 현재의 검정교과서 체제에서조차도 역사교육이 헛돌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아이들로 하여금 역사를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자랑스러워 하며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아도 역사교육에 대한 아이들의 염증은 심각하다. 자신이 인문계열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과목이 유난히 어렵다는 학생들이 많을 뿐 아니라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해설지를 보지 않으면 좀처럼 그 원인을 이해하기 힘들어서 역사는 ‘통째로 외워야만 풀 수 있다’고 치부되기 일쑤다. 역사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영혼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선조의 흔적임을 학생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교육 현실이 열악하다 보니 역사를 일단 들입다 외우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대입 준비생들이 수많은 모의고사 문제집과 교과서를 읽으면서 한 번도 우리 역사에 대해 자기만의 생각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면 그것은 누구의 실패인가. 어쩌면 제도적으로 역사 교육이라는 판 자체를 만드는 정부의 실패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정부와 여당이나, 결사반대를 외치는 야당이나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정작 역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은 학생 아닌가? 왜 정치 싸움에만 골몰하는가? 학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역사 교과서에 대한 편찬 과정을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자율적으로 내버려 두는 것이 옳으냐 하는 피상적인 도돌이표 논쟁만 계속하는 어른들이 한심할 따름이다. 역사학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90% 이상의 역사학 교수들이 국정화에 반대했다고 하는데, 나는 묻고 싶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 첨예한 갈등상황에 이르도록 교수님들은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더 이상 숨 막히는 역사 수업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은 과연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미래의 역사를 이끌어갈 학생은 안중에도 없이 어른들만의 세력 싸움으로 변질된 역사 교과서 논란이라니, 생각할수록 헛웃음이 나온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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