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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별 앞에서 구원(舊怨)은 없었다. 한때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갈등을 빚은 사이였지만 이별 앞에서는 화해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노구를 이끌고 2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빈소를 몸소 찾았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4시께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차림으로 경호관 2명을 대동하고 빈소에 들어섰으며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화 투쟁 대상이었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로도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는 문상을 마치고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를 만나 김씨의 건강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질긴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5·17 조치로 상도동 자택에 가택 연금을 당했고 신군부에 의해 정계 은퇴를 강요당하면서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이어 1983년 광주항쟁 3주년을 맞아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선 김 전 대통령은 이듬해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했고 1985년에는 신민당을 창당해 전두환 정권 퇴진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하나회 척결을 통한 숙군을 단행했고 임기 중반인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군사 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모두 구속시켰다.
특히 검찰이 1980년 쿠데타에 가담했던 신군부 인사를 기소하지 않자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해 결국 전원을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인 지난 2010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 갔을 때 전 전 대통령이 함께 초대된 것을 알고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대통령도 아니데이"라고 면박을 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전경석기자 kada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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