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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종자 전쟁


1929년 파란 눈의 서양인 5명이 당나귀를 타고 조선 땅에 나타났다. 이들의 정체는 미국 농무성이 한중일 3국에 파견한 '콩 원정대(정식 명칭은 '도셋-모스 동양농업탐험원정대')' 대원들. 임무는 미국 땅에 적합한 콩의 종자를 찾는 것이었다. 길을 가다가 콩만 보이면 어디서든 사진을 찍고 샘플을 채취했다. 그렇게 80여일간 이 땅에 머물며 수집한 콩이 무려 3,379점이었다. "조선에서 모은 자료와 사진만으로도 훌륭한 책을 쓸 수 있다"는 보고서 내용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종자를 모은 미국은 현재 65만종에 달하는 세계 최대 식물종자원 보유국이 됐다.

종자는 한 나라의 식량 주권을 지키는 데 절대적인 존재다. 종자가 없으면 다국적기업으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종자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이 종자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이유다. 2차대전 당시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독일군에게 900일간 포위됐다. 당시 그곳에 있던 바빌로프식물산업연구소의 러시아 과학자들은 종자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영양실조로 발을 질질 끌고 31명의 동료가 굶어 죽는 것을 지켜봤지만 이들은 단 한 톨의 종자도 훼손하지 않고 지켰다. 종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자마자 가장 먼저 조선미 품종에 대한 대대적 조사에 나서 1,143개의 품종을 수집한 것도 같은 이유다.

국산 딸기 보급률이 토종 품종 '설향'의 약진에 힘입어 90%를 넘어섰다고 한다. 불과 10년 전 일본 품종이 90%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런 상전벽해(桑田碧海)도 없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포도·토마토·양파 등의 종자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토마토 종자의 ㎏당 가격을 200만원 넘게 받아도 눈물을 머금고 당할 밖에 없다. 이렇게 로열티로 빠져나간 돈이 800억원이나 된다. 종자 주권을 지키지 못한 대가가 너무도 혹독하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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