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그은 선 하나에 죽자고 달려드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편을 가르고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익숙한 현실’도 그렇게 무대 위에 펼쳐진다.
일본 작가 츠치다 히데오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경범죄 상습범을 가두는 미래의 한 교도소를 배경으로 장난삼아 그은 선 하나가 어떻게 사람 사이에 벽을 세우고, ‘너와 나’를 ‘내 편과 네 편’으로 만드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6명의 수감자와 2명의 교도관이 지내는 교도소는 누군가의 대사처럼 “작업 시간이 아닐 땐 그냥 아파트 놀이터”처럼 평화로운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가 ‘꾸리아’와 ‘동꾸리아’로 분리되고, 교도소를 가로질러 새 국경선이 생긴다. 교도소 안에 선을 긋고 출신 지역에 따라 편을 갈라 놀던 8명은 점차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갈등을 빚는다.
연극은 작품과 현실의 경계선을 경쾌하게 넘나든다. 아니, 어쩌면 그 선을 지워버리는지도 모르겠다. 김광보 연출은 기승전결로 담백하게 떨어지는 인물의 변화 속에 시대의 자화상을 정교하게 담아냈다. “국경이 어떻게 되든 국가는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라 말하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마치 정상회담의 국가 대표라도 된 양 출신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고, 꾸리아도 동꾸리아도 아닌 제3 지역 ‘고아’ 출신의 수감자는 열강(?)의 눈치 속에 주눅이 든다. 균형을 잡으려는 자는 출신 성분을 의심받고,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선택을 강요당한다. 해외여행·국제교류라며 웃음 짓던 ‘살짝 선 넘어가기’가 전쟁 같은 도발로 변해가는 동안 관객은 사회에 은밀하게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부터 남북 대치 상황 속의 물리·심리적인 선 등 삶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벽과 마주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교도소’라는 공간 설정도 누군가에겐 씁쓸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 속에 8명의 연기파 배우(유연수·김영민·유병훈·이석준·유성주·한동규·이승주·임철수)가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며 빚어내는 호흡은 단연 돋보인다.
한 번 그어진 선, 한 번 갈라선 마음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 ‘닭도리탕’(극 중 개인이 집단이 되어 저지르는 폭력과 이 분위기에 심취한 사람을 일컫는 말) 같은 현실이 더 씁쓸하다. 11월 18일까지 LG아트센터.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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