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바뜨망~” “플리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 위로 발레 용어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음악과 구호에 맞춰 동작을 펼쳐내는 무용수들이 좀 어색하다. 머리는 하나같이 짧게 쳤고, 공동 구매한 듯 맞춰 입은 트레이닝복은 그 자체로 ‘충성’의 아우라를 내뿜는다. 다소곳이 바(bar)에 기대어 우아한 몸짓을 선보이는 이들은 바로 대한민국 최전방을 지키는 육군 25사단 일반전초(GOP) 장병들이다.
국립발레단과 육군 25사단이 협조해 올 5월부터 진행한 발레 교실 수강생인 17명의 장병은 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과의 발레수업에 참석해 8개월간 갈고닦은 기량을 뽐냈다.
국립발레단에 따르면 개인 신청을 통해 모인 17명의 GOP 발레리노들은 매주 수요일 휴식시간을 활용해 부대 면회실에서 발레를 배웠다. 군인과 발레, 이 낯선 조합을 추진한 옥인호 중령은 “최전방 장병은 외부와 단절된 가운데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며 “장병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활력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부대 공연을 다니는 국립발레단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군의 제안에 국립발레단에선 박상철 발레마스터와 이향조 단원이 부대를 찾아 강의를 진행했다. 8개월간 장병들의 변화를 직접 목격한 이 단원은 “처음엔 인사도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수강생들이 무뚝뚝했지만, 이젠 먼저 농담을 건네는 분들도 있다”며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는데 지금은 이분들에 대한 욕심이 점점 생긴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장병들은 강 감독과 함께 스트레칭을 하거나 동작을 교정받는 등 특별한 수업을 받았다. 이따금 강 감독의 강도 높은 몸풀기에 ‘아악’ 하는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강 감독은 “군 생활과 발레는 엄격한 규칙생활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며 “매일 연습할 수 없는 환경에서 8개월간 이만큼 실력이 늘었다는 것도 자기만의 규율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군 생활에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적으로도 강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향 후 같은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갈 계획을 밝혔다.
발레교실에 참여하고 있는 정조혁 상병은 “발레의 경쾌하면서도 힘 있는 동작을 할 때면 스트레스도 해소되는 기분”이라며 “발레교실이 자칫 우울해질 수도 있는 GOP 생활을 긍정적으로 바꿔줬다”고 말했다.
17명의 군인 무용수들은 오는 24일 25사단 사령부 장병 종합예술제에서 특별한 무대를 펼친다.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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