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에는 유난히 비가 잦았다. 가뭄 속에 단비라 고맙기는 하지만 내린 양은 감질나는 데 그쳤다. '가을장마 속 가뭄과의 사투'라는 기묘하고 안타까운 상황의 복판에서 문득 우리가 생활하는 모습과 가뭄에 대처하는 방법이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생활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다.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가뭄도 비슷하다. 가뭄으로 쓸 물이 줄어든다 해도 어딘가에서 충분한 양의 물을 끌어오거나 물 사용량을 상황에 맞게 줄일 수만 있으면 된다.
문제는 생각과 현실의 괴리다. 수입을 늘리거나 어딘가에서 많은 물을 끌어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사용량 감소 쪽에 더 많은 노력이 집중된다. 그런데 돈이든 물이든 덜 쓰고자 노력하는 많은 이들이 쉽게 놓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표시 나지 않게, 소리 없이 새는 돈과 물'이다.
수돗물은 상수도관을 통해 공급된다. 그리고 상수도관의 대부분은 땅속에 묻혀 있다. 따라서 낡거나 관리가 부실해 손상 또는 파괴될 수 있다. 누수율은 상수도관에서 물이 새는 비율이다. 상수도통계(2013년 기준)에 따르면 대도시는 비교적 낫지만 중·소도시의 누수율은 30~50%에 육박한다. 새는 물의 양만 해도 한해 무려 7억㎥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합천다목적댐의 총저수량과 맞먹는 양이다. 특히 현재 가뭄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충남서부 지역의 경우에는 누수량만 막아도 지금의 어려운 물 사정에 숨통을 틀 수 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논어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는 후에 하고, 본질이 있는 다음에야 꾸밈이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를 '물 이용은 새는 물 막기부터'로 바꿔 생각해본다.
새는 물을 잡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고 중요하다. 가뭄이 심각한 충남도는 K-water와 협약을 맺고 본격적인 누수 저감을 추진하기로 했다. K-water의 누수탐사 및 수압관리 전문가들을 투입해 각 지자체의 유량 감시체계를 새로 구축하는 한편 노후관 교체, 누수복구, 관망정비, 수압관리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목표는 예산·홍성 등 다섯 개 지자체의 누수율을 10% 낮춰, 연간 570만㎥의 물을 절약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새는 물을 막으면 지방상수도사업의 경영효율을 높일 수 있다. 나아가 더 많은 물을 확보하기 위한 대규모 신규투자 등도 줄일 수 있다. 관건은 관심이다. 주민과 지자체가 누수를 막는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누수율은 달라진다. 돈이든 물이든 새는 것을 막으면 결국 자신이 득을 본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어디 새는 곳은 없는지 함께 눈에 불을 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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