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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외국인 관장도 적임자는 아니다

지난 3월, 피카소와 고야의 고향인 스페인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ACBA)이 기획한 '야수와 군주' 전시에 후안 카를로스 전 스페인 국왕과 볼리비아의 노동운동가 도미틸라 충가라가 개와 함께 뒤엉켜 성행위를 하는 모습의 조각이 출품된 것. 벌거벗은 인물상 아래로는 나치 친위대(SS)의 헬멧이 깔려 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미술가 이네스 두작의 이 작품을 본 MACBA의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전시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 작가와 큐레이터가 거부하자 그는 개막 당일 아예 전시를 취소해 버렸다. 미술계의 강한 반발로 궁지에 몰린 마리 관장은 사흘 만에 전시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고 '문제의 조각'도 공개됐다.

이 사건은 '수간 조각 스캔들'로 외신에까지 보도되며 미술관에 치욕을 안겼다. MACBA 재정위원회 명예위원장이 후안 카를로스의 아내인 소피아 전 왕비라는 점을 들어 마리 관장이 권력의 외압에 굴복했다는 의혹도 뒤따랐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미술관에 사표를 내면서 "큐레이터에 대한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했다"고 말해 당시 전시를 준비한 두 큐레이터까지 일자리를 잃게 했다.

사건의 장본인인 바르토메우 마리가 일 년 이상 공석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관장 공모를 진행했으나 "관장에 도전할 만한 사람들은 다 냈다"던 15명의 후보 가운데 적임자를 찾지 못해 재공모를 실시했다. "외국인에게도 관장의 기회를 주겠다"는 김종덕 장관의 발언에 힘입어 외국인 12명을 포함한 22명이 지원했고 이 중 한국인 2명과 마리 전 관장이 역량평가와 신원조회 단계까지 추려졌다.



세계적 안목과 네트워크를 갖고 국내 학연·지연에 휘둘리지 않을, 외국인 관장도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미술계가 떠들썩하게 질타를 받은 마리 관장밖에 인물이 없었을까. 게다가 법인화의 난제를 안고 있는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을 개관한 지 갓 1년을 지낸 데다 덕수궁관, 청주 수장고 등 체제를 정비하는 과도기다.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세계적 기준에 걸맞은 조직 개편과 체제 정비를 우선한 다음 통찰력을 갖고 우리 미술계에 비전을 제시할 준비된 외국인 관장을 임명하더라도 늦지 않다.

/문화레저부=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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