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9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만찬을 끝낼 무렵이었다. 영국의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묵은 호텔 객실로 커다란 다이아몬드 원석 몇 개가 배달됐다. 보석을 보낸 이는 살인·내전교사 등 전쟁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찰스 테일러 당시 라이베리아 대통령. 단순한 선물 같았지만 이로 인해 캠벨은 국제전범재판에 증인으로 서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가 받은 보석은 반인권의 상징물인 '피 묻은 다이아몬드(Blood Diamond)'였다.
순결·순수의 상징 다이아몬드. 귀한 만큼 독특한 이름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았다. 저주를 부르는 보석으로 통하는 '피렌체 다이아몬드'가 대표적. 137.27캐럿의 눈부신 이 옐로 다이아몬드는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단두대로 보낸 것도 모자라 오스트리아의 두 황후까지 죽음으로 내몬 후 사라져 버렸다. 1,000만 관객의 영화 '도둑들'에 등장한 110.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Sun-Drop)'은 2011년 1,090만달러(약 126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국가 간 분쟁을 일으키는 다이아몬드도 있었다. 인도 영화스타 등은 최근 영국 왕관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 '코이누르'에 대해 영국이 식민지 시절 인도에서 훔쳐간 것이라며 반환 소송을 추진 중이다. 추정 가치가 1억파운드(약 1,735억원)에 달하니 그럴 만도 하다.
최근 홍콩의 한 갑부가 7살짜리 딸을 위해 소더비 경매에 나온 두 개의 다이아몬드를 5,730만스위스프랑(약 890억원)에 사들인 후 각각 '조세핀의 블루문'과 '귀여운 조세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딸을 위해 수백억원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그와 그 딸은 알고 있을까. 이 화려한 보석 안에는 저임금에 고통 받는 남아공 원주민들의 피와 땀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다이아몬드가 과거 자신들 역시 고통받았던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정책을 대표하는 자원이라는 점도 이들은 모를 것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