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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가지들을 재료로 정자를 만든다. 파란색 꽃과 파란색 조개껍데기로 정자 주변을 장식하고 정자 내벽에 으깬 베리류의 과일을 바르기도 하고, 부드러운 나무껍질을 붓 삼아 으깬 베리에서 나온 즙을 더욱 섬세하게 내벽에 칠하기까지 한다.
설치 미술을 전공한 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우림의 우거진 덤불에서 정자를 만드는 파란정자새 이야기다. '자연의 예술가들'은 이처럼 정교하고 복잡한 정자를 만드는 정자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래, 매미, 새들과 함께 즉흥연주를 벌이고 동물들의 노랫소리로 음악을 만들어 '종간(種間) 음악가'라 불리는 저자는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기 위한 목적에서 책을 쓰지 않았다.
그는 정자새라는 소재를 통해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던진다. 생물학적으로 요구되는 기본 이상으로 화려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종의 생물은 많다. 긴팔원숭이는 멋들어진 이중창을 주고받고 두루미는 근사한 짝짓기 춤을 춘다. 극락조도 당당하게 자신의 멋진 깃털을 뽐낸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최소한 우리가 아는 한에서, 동물이 만든 구조물로서 그 복잡함이나 정교함이 순수예술이라 할 만한 수준으로까지 무언가를 만드는 동물은 딱 한 종, 정자새뿐이다. 정자새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인간과 다른 종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정자새의 행위는 설치 예술이라고 불릴 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정자새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 이유는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편견을 깰 수 있는 행위를 하는 동물이 정자새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저자가 정자새의 정자 짓기를 인간이 누리고 즐기는 예술과 같은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술을 모르는 인간의 무지함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무엇보다 진화를 설명하는 개념인 성선택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성선택설은 다윈이 적자생존 개념으로 분석되지 않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으로, 쉽게 말해 암컷이 좋아하는 행위를 하는 수컷이 선택받는다는 개념이다.
다윈이 성선택설을 생각한 이유는 자연선택설로는 설명이 어려운 불필요한 장식을 지니고 있거나 과장된 동작을 하는 동식물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공작의 부채꼴 꼬리는 적자생존 개념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부채꼴로 펴지는 수컷 공작의 꼬리야말로 자연에 존재하는 과한 아름다움의 가장 잘 알려진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윈은 이를 보고 "공작 꼬리 깃털을 볼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말한 바 있다.
성선택 개념에 따라 정자새를 포함해 대부분의 경우 수컷들이 암컷에게 선택 받기 위해서 장식하고 꾸미는 행위를 한다. 그러나 성선택설이 이런 행위를 하는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겠지만, 왜 그와 같은 미적인 능력이 특정 종에만 나타나는 지, 그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성선택설의 기능적인 설명에만 빠져 자연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행위를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생각 이상을 인간이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번에 23시간까지 계속 노래를 이어갈 수 있는 혹등고래, 서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 색깔과 모양을 바꾸는 오징어 등.
저자는 이러한 자연의 동물들을 소개하며 단순히 몰랐던 사실을 알려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의 개념, 정의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힌다. 2만5,000원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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