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이 재상의 공간이라면 창덕궁은 군주의 공간입니다. 조선 건국 이후 태조가 경복궁을 창건할 때는 신하의 입김이 컸지만, 태종이 창건한 창덕궁은 왕이 주체가 됐어요. 이는 궁궐 내부 공간의 크기와 규모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5일 개포도서관에서 열린 박희용 박사(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의 고인돌 강좌 ‘시간과 공간으로 풀어낸 서울건축문화사’의 네 번째 강의에서 박 수석은 왕이 기거했던 법궁(法宮)과 재난을 대비해서 마련한 이궁(離宮)의 양궐 체제였던 조선시대 궁궐의 창건 이념과 역사 그리고 궁궐 내 공간의 정치학을 주제로 강의를 펼쳐나갔다.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박 수석은 조선의 첫 궁궐인 경복궁을 비롯해 태종이 창건한 창덕궁, 성종이 건립한 창경궁 등 5대 궁궐의 창건부터 오늘날까지의 연혁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면서 각 궁궐의 창건에 얽힌 인물과 대문의 축조 시기 등 건축의 규모와 위치 그리고 특징 등을 설명해 나갔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창건 주체에 대한 설명에서 그는 “창덕궁은 규모는 작지만 임금의 공간이었던 내전이 경복궁보다 넓었으며 반대로 신하들의 공간인 외전은 경복궁이 두배이상 넓다”면서 “건국 초기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에 임금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존재이지만 상징적인 권력이 국가를 다스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지나친 왕권강화를 경계했다. 경복궁 창건이 이같은 정치적인 계산이 포함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왕자의 난이 벌어진 경복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태종이 창덕궁을 창건했다는 해석은 맞지 않다”면서 “왕자의 난이 일어난 후 세종은 경복궁에서 기거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수석은 경복궁 창건의 주역이었던 환관 김사행과 창덕궁을 창건한 주역인 내시 박자청의 활약상을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소개했다. 아울러 고려시대 궁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월대가 경복궁 근정전에 등장하는 등 조선시대 궁궐의 특징을 소개하면서 궁궐의 공간정치학을 설명했다. “법궁이었던 경복궁의 근정전에 오케스트라 단처럼 월대를 조성하고 계단 위와 아래의 계층을 엄격히 구분지었어요. 정조는 품계석을 꽂아서 왕과 신하의 공간이 다르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려주었죠. 월대 위에는 당상관과 왕이 지정한 사람만 오를 수 있었어요. 이처럼 위계질서를 엄격하게 정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죠.”
박 수석은 동궐도,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일제시대 사진자료 등 다양한 기록을 근거로 조선왕조의 궁궐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날 강좌에는 5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조선의 건국과 궁궐의 조성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에 한 시민은“태조와 김사행, 태종과 박자청에 의해 창건된 경복궁과 창덕궁에 얽힌 역사와 정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라면서 “공공도서관에서 열란 수준높은 강의 덕분에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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