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의 선행지표로 알려진 구리, 일명 '닥터 코퍼(Dr Copper)'의 가격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중국 경기둔화와 달러화 강세 여파로 구리뿐 아니라 니켈·아연 등 금속 가격이 줄줄이 곤두박질치면서 원자재 시장을 침체로 밀어넣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가격은 전날보다 2%가량 떨어진 톤당 4,49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 가격은 톤당 4,443.50달러까지 밀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9년 5월 이래 가장 최저치를 기록했다. 구리 가격 낙폭은 올해 들어서만 28%에 달하고 고점을 찍었던 2011년에 비하면 반 토막 난 상태다.
니켈 가격도 하루 만에 6%가량 하락하며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날 니켈 값은 톤당 8,175달러까지 하락했다가 8,300달러로 마감,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아연 가격 역시 최근 톤당 1,500달러가 붕괴되며 2009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6개 비금속 가격에 기초한 LME의 비금속지수는 올해 들어 28% 하락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금속 가격이 일제히 약세를 보이는 것이 중국의 경기둔화와 달러화 강세 때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 구리시장 컨퍼런스의 분위기가 "극도로 비관적이었다"면서 이는 전 세계 구리 소비의 40%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둔화 등 거시적 악재의 영향이 주요인이 됐다는 시장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했다.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씨티그룹의 이반 스파코브스키 애널리스트는 "시장의 비관론은 중국의 수요둔화와 거시경제 전망에 초점을 둔 것"이라며 "중국 당국이 단시일 내에 추가 부양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시점이 임박했다는 관측과 함께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달러화로 표시되는 상품 가격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지속되는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생산이 줄어들지 않고 있어 주요 원자재 가격은 당분간은 가격 하락 부담을 덜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대 소비처인 중국의 수요가 둔화하고 가격 약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체 공급마저 늘어나면 금속 가격은 장기적인 약세가 불가피하지만 기업들은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오히려 생산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구리 생산은 1,870만메트릭톤으로 역대 최대 규모에 달한다. 내년에도 4개의 광산이 새로 문을 열면서 구리 생산은 올해보다 5.1% 증가할 것이라고 바클레이스은행은 내다봤다.
바클레이스의 데인 데이비스 금속 애널리스트는 "업계로서는 구리 생산을 낮추는 것이 좋지만 개별 기업들 입장에서는 어느 곳도 생산을 줄여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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