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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을 좋아했던 소녀 그 곳서 책 보며 세상과 소통
편집자된 후 1000여권 만들어
독자들의 선택 폭 넓힐 수 있게 다양한 작가 발굴하려고 노력
'마음산책' 브랜드에 신뢰 갖고 책 구매하는 독자 늘리고 싶어
다락방에서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를 읽으며 책의 매력에 빠진 소녀는 사람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보다는 책을 통해 세상을 먼저 알게 됐다. 텔레비전을 통해 비추는 세상 모습도 신기했지만 왠지 텔레비전 안의 모습은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책 속 이야기는 머리를 지나 가슴을 울렸다. 그렇게 수줍음이 많던 아이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책을 친구 삼아 세상을 살아왔다.
책과 함께한 시절이 좋았지만 지금 당시를 생각해보면 "끔찍했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마치 자폐아처럼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아이가 편집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우려와 달리 편집자라는 직업은 적성에 잘 맞았다. 지난 1985년부터 편집자 일을 시작해 2000년 출판사인 마음산책을 열기까지 15년, 대표가 된 후 15년. 총 30년간 편집자의 길을 걸으며 직간접적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만 1,000권이 넘는다. 출판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해서인지 이제는 '국정원'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에게 출판과 관련된 일을 물어보면 무엇이든 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정은숙(52·사진) 마음산책 대표의 이야기다.
3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지겨울 것 같아 물었다. 행복하냐고. 정 대표의 대답은 단호했다. "삶이 행복하다고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없지만 책과 관련된 일이 행복하다고 물으면 '그렇다'입니다. 나를 살아 있게 하니까요".
그의 말에 따르면 손과 발을 움직여 끊임없이 쌓여 있는 원고를 하나의 책으로 만드는 일이 그를 살아 있게 한다. 매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그래서 성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게 정 대표를 행복하게 만든다.
성실할 수 있는 이유는 책을 만들면서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가 내세운 '푼크툼' 개념을 들어 정 대표는 책의 특별함을 설명한다. '찌름'을 뜻하는 라틴어인 푼크툼과 같이 책을 통해서 독자는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책이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책에서 얻는 문학적 상처는 다른 매체의 그것과는 다르다"며 "이 상처는 깊이 각인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라고 밝혔다.
이런 마음으로 출판사를 연 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하며 300권의 책을 만들어냈다. 한 권 한 권 다 새로운 기분으로 책을 만들어서일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기억에 남는 저자를 묻는다면 답할 수 있지만 책을 꼽는 것은 어렵다"고 답했다.
책의 우열을 가리기 힘든 만큼 책을 만들 때의 원칙은 확실하다. 첫째도 저자의 매력, 둘째도 저자의 매력이다. 정 대표는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책은 저자가 있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끔은 정 대표가 매력을 느낀 작가가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끊임없이 매력을 가진 저자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고유한 매력을 가진 저자를 많이 발굴하다 보면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저자가 많아져 출판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다양성이 문화"라며 "한 사람이라도 매력을 느끼는 책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작가들의 작가'로 평가 받는 제임스 설터, 퓰리처상을 비롯해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이자 '요미우리 문학상' '고단샤 에세이상' 등을 수상한 요네하라 마리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정 대표의 안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작가들이다.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작가를 소개하는 것은 보물찾기일 수도 있지만 위험이 큰 모험일 수도 있다. 정 대표는 "이들 작가의 작품을 읽은 후 내가 먼저 매혹당했고 한국에서 책이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갔다"며 "텍스트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좋은 작가의 작품을 읽히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작은 욕심은 회사에도 녹아들어 있다. 마음산책은 정 대표를 포함한 직원 10명이 원고기획부터 출간까지 외주업체 없이 모든 일을 진행한다. 아울러 마음산책 페이스북·블로그는 모두 직원들이 참여해서 포스팅하고 있으며 '이너스터디'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출판 관련 공부를 한다.
이 때문에 일의 강도는 다른 출판사보다 세지만 직원들끼리 공유하는 감정의 밀도는 여느 출판사보다 높다. 정 대표는 "마음산책은 회식이 거의 없는데도 영화·미술·음악 등 문화적 감수성이 동질하다는 것을 확인한다"며 "사적인 대화를 많이 하는 문화는 아닌데도 각자 취향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고 서로 좋은 작품을 추천하는 데 적극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성실함과 동질감으로 마음산책은 15년 동안 자신만의 브랜드를 조금씩 구축해가고 있다. 정 대표는 "가끔씩 이 책은 마음산책에서 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쁘다"며 "마음산책이라는 브랜드에 신뢰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을 더 늘리고 싶다"고 밝혔다.
하루하루 편집자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는 정 대표답게 앞으로 계획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편집자를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걷고 마시고 웃고 울고 공부하는 삶이 곧 편집자의 운명이니 원대한 계획 따윈 개에게나 줘버리고 싶어요."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좋은 편집자가 되고 싶다면 문인·예술적 기질 훈련 통해 키워야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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