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로 여는 수요일] 냉장고









냉장고-이재무 作

한밤중 늙고 지친 여자가 울고 있다

그녀의 울음은 베란다를 넘지 못한다

나는 그녀처럼 헤픈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그녀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녀 몸 속엔

그렇고 그런 싸구려 내용들이

진설되어 있다 그녀의 몸엔 아주 익숙한

내음이 배어 있다 그녀가 하루 24시간

노동을 쉰 적은 없다 사시사철

그렁그렁 가래를 끓는 여자

언젠가 그녀가 울음을 그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들처럼 흔한 것도 없으니

한밤중 늙고 지친 여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울음에 주목하지 않는다

살진 소파에 앉아 자정 너머의 TV를

노려보던 한 사내가 일어나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그녀에게로 간다

그녀 몸 속에 두꺼운 손을 집어넣는다

함부로 이곳저곳을 더듬고 주물러댄다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 밥은 먹고 다니냐? 시원한 두유 줄까? 싱싱한 과일 줄까? 꽃무늬 일바지 뒤적여 원하는 모든 걸 내어주었지. 24시간 일하고 밤새도록 울어도 귓등으로 들었지. 그녀가 마침내 울음을 그치고 나면, 평생 참았던 가슴속 얼음이 추깃물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비로소 후회하기 시작하겠지. '현비유인삼성냉씨신위' 지방을 써 붙이고 생전의 불효를 뉘우치며 통곡하겠지. 때늦어 후회하지 말고 살아 있는 냉장고에게 효도하자. <시인 반칠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