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한 줄의 낙서였다.
"The people want the fall of the regime(사람들은 정권이 무너지기를 바란다)."
시리아 남부 다라(Daraa)라는 작은 도시의 벽에 10대 소년들이 아랍어로 휘갈겨 쓴 이 말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의 도화선이 됐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10여명의 소년들을 체포해 수 주 동안 고문을 가했고 아이들을 석방하라는 평화적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정부의 과도한 유혈 진압에 국민들의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면서 정국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3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4년 반. 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사이 시리아에서는 25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1,100만명 이상이 고향을 버리고 난민이 됐다. 그리고 내전의 혼란을 틈타 반군으로 섞여 들어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세력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는 놀라우리만큼 더딘 대응을 보였다. 서방 국가들은 시리아 정부를 비난하고 알아사드 정권 퇴진을 요구했지만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IS의 위협이 커지자 미국이 지난해 아랍 국가들과 연합해 시리아 공습을 개시했지만 종교와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연합군의 공조도 오래가지 않았다. 중동 국가들은 어느 틈엔가 공습작전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알아사드 정권에 우호적이던 러시아는 IS를 격퇴한다는 명분 아래 서방의 지원을 받는 온건 반군을 공격하고 있다.
방조에 가까웠던 초기의 무관심, 전략도 방향성도 안 보이는 최근의 어정쩡한 개입은 결국 최악의 테러 공포라는 부메랑이 되어 국제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터키 앙카라역 광장과 러시아의 여객기,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폭발과 무차별 총격은 이제 누구도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뼈아픈 경종이 됐다.
상황이 이 지경이 돼서야 세계 지도자들도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요20개국(G20) 지도자들은 성명을 통해 테러 척결을 위한 국제 공조를 다짐했다. 시리아 사태를 놓고 엇박자를 냈던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도 사태의 위급성을 인식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시리아의 정권 이양을 위한 일정도 제시됐다.
이번에야말로 국제사회가 방향을 잡고 힘을 모을 수 있을까. 솔직히 낙관은 어렵다. G20 성명이 구속력 없는 담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테러 근절에는 동의하지만 누구도 깊숙한 군사개입을 원하지 않는 가운데 세부전략에서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러시아의 행보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다만 이번 파리 테러로 모두의 뇌리에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각인된 것 같다. IS 테러의 피해는 위험지역에 발을 들였다가 참수당한 몇몇 희생자들의 몫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됐다는 것이다. 성명을 발표한 G20 지도자들의 결의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악수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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