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아우르는 전 세계 196개 국가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도 합의를 도출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은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어하지 않으면 기후재앙으로 지구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협정을 근간으로 오는 2020년 출범하는 신기후체제에서는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는 전 세계 에너지 패러다임에 일대변화가 예상된다.
화석연료가 전무하면서도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우리에게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인 셈이다.
모두 31쪽 분량의 파리 협정문을 살펴보면 우선 195개국과 유럽연합(EU)으로 구성된 196개 당사국들은 신기후체제의 장기목표로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을 산업화 이전(1750년)과 비교해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동시에 상승폭을 1.5도까지 제한하기로 노력하기로 했다. 지구 온도가 2도 올라가면 대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의 경고와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몰디브 등 군소도서국가의 호소를 수용한 것이다. 당사국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는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이 조속히 정점을 찍고 줄어들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당사국들은 각국 여건을 반영한 최선의 목표를 담은 국가별자발적온실가스감축방안(INDC)를 5년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에 제출하기로 했다. 차기 감축목표는 반드시 이전 수준보다 진전돼야 한다. 이번 총회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INDC에 대한 국제법적 구속력은 부여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제출만 의무화하고 이행은 각국의 자율적인 조치에 맡겼다. 다만 당사국들은 2023년부터 5년 단위로 INDC를 포함해 파리협정 전반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기로 했다.
선진국은 2020년부터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는 데 구체적으로 얼마를 지원할지를 확정하지 못했지만 이전보다 많은 지원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20년 이후 선진국이 조성할 기후재원 규모는 연간 최소 1,000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진국은 지난 2009년 코펜하겐 총회에서 개도국 등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20년까지 매년 1,000억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기후재원 액수는 2025년에 다시 조정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합의문과 달리 파리협정에는 선진국 이외 국가들의 자발적인 기여를 장려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교토의정서에 기초한 기존 기후체제에서는 개도국으로 분류돼 별다른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됐던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참여하는 신기후체제 출범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나서는 동시에 기후재원 조성에도 일정 부분 기여해야 하는 과제와 부담을 안게 됐다. 우선 감축 부문에서는 저탄소 경제정책,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등을 통해 가파른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세를 감소세로 돌려세워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1990년 2억4,150만톤이었던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0년 4억1,190만톤, 2012년에는 6억톤으로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산업계는 우리 정부가 파리 협정에 앞서 올해 6월 말 제출한 2030년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를 감축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INDC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고 불만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차기 INDC 목표가 더 진전돼야 한다는 파리협정의 문안을 감안하면 이 같은 산업계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선진국 이외 국가의 자발적 기여를 장려한다는 기후재원 부문에서도 한국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리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한국 입장에서 신기후체제가 반드시 불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며 "선진국에만 부담을 지우던 기존 기후체제가 유지되더라도 국제사회에서의 위상과 온실가스 배출량 등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는 더 이상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석연료 사용 억제를 골격으로 한 신기후체제 출범이 오히려 화석연료가 나지 않는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회성 IPCC 의장은 이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석유나 가스 등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며 "기후변화 대응은 한국 기업들에 신시장을 선점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양광·풍력·수력·지열·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 및 이들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 시장은 국내 업체가 선도할 수 있는 유망시장으로 꼽힌다. /임지훈기자 jhl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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