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년 전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 일대에 용암이 분출했다. 백두산처럼 중심이 뻥 하고 터지는 중심분출이 아니라 땅의 갈라진 틈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열하분출'이었다. 어떤 용암은 중력 작용으로 이곳에 흐르던 강 밑에 빠졌고 또 어떤 용암은 내려가기도 전에 식어 굳었다. 미처 입수하지 못한 용암은 높이 30~40m의 절벽이 돼 양안에 병풍처럼 줄지어 시립했고 용케 강 밑까지 들어간 용암은 변화무쌍한 굽이와 세찬 물살을 만들어냈다.
한탄강만큼 생김새가 변화무쌍하고 수려한 강이 또 있을까. 발품을 팔아 수직절벽 끝까지 가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한탄강은 우리가 익히 봐오던 한반도의 풍광이 아니다.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한여름 이곳을 찾는 래프팅족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주상절리다.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은 주상절리야말로 자연이 빚은 예술작품이다. 특히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세로 형태의 일반적인 주상절리와는 달리 수백 개의 돌베개를 가로로 쌓아놓은 듯한 독특한 형상을 자랑한다.
선조들도 한탄강의 비경을 지나칠 수 없었나 보다. 조선이 낳은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금강산 여행길에 만난 한탄강에 매료돼 화적연도·삼부연도·정자연도 등의 작품을 남겼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은 '건널목의 물결은 맑고도 얕아(渡口波淸淺)/흐름을 보니 고기를 셀 정도네(臨流可數魚)'라며 시를 지어 노래했다.
이렇게 멋진 한탄강이 임진강과 함께 환경부로부터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곳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다니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는 옛 노동당사, 격전을 치른 백마고지 등 역사의 현장들도 자리해 있다.
때마침 '한탄강 얼음트래킹 행사'가 16~17일 이틀간 철원군 갈말읍 태봉대교를 비롯한 한탄강 일원에서 열린다. 저 밑으로 내려다보기만 하던 한탄강의 한복판에 들어가 둘러싼 절경을 마음껏 즐길 기회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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