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테슬라(Nicola Tesla·사진). 100년 전으로 돌아가 발명가 한 사람만 태우고 돌아올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1순위 대상이다. 혹자는 발명왕 에디슨을 데려와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일리가 있다. 20세기 초 발명과 창의력 혁명을 이끈 주인공이니까. 테슬라의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평생 에디슨의 견제를 받아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애초에는 둘 사이가 좋았다. 테슬라의 실력을 알아보고 미국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 에디슨이었다. 1856년 세르비아 스미즈란 지역(오늘날 크로아티아) 출신인 그는 대학 졸업 후 파리로 이주, 에디슨의 유럽 자회사에서 근무하며 이름을 날렸다. 어렸을 때부터 어학과 과학의 신동으로 소문났던 그의 실력은 본사까지 알려져 미국 에디슨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뽑혔다.
얼마 안 지나 둘의 관계는 틀어졌다. 에디슨이 테슬라의 연구를 도용하고 연구개발 성공 때 주겠다던 보너스마저 지급하지 않았던 탓이다. 약속했던 보너스 5만 달러를 달라는 테슬라의 요구에 에디슨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자네 아직 미국식 농담에 익숙하지 못하군.’
에디슨과 결별한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사와 손잡고 미국의 전류 공급 방식을 수주하기 위해 1893년 에디슨 연구소-제너럴 일렉트릭 컨소시엄과 한판 승부를 벌였다. 기술 표준을 둘러싼 최초의 전쟁으로도 불리는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의 결과는 테슬라의 승리. 에디슨이 고집하던 직류방식의 전력공급보다 교류방식이 훨씬 뛰어나다고 주장한 그는 1893년 결국 경쟁에서 이기고 상금 21만 달러도 챙겼다.
이민 출신의 무명 과학자인 그에게는 ‘에디슨을 누른 진짜 발명가’라는 찬사가 붙었다. 테슬라로서는 이때가 인생의 정점. 테슬라는 연구를 지속했으나 지원을 다짐했던 월가의 금융업자가 약속을 어긴 뒤부터는 여생을 빈곤 속에서 살았다. 800여 건에 달하는 특허출원 중에는 시대를 너무 앞서나갔거나 극비로 분류될 만한 발명이 많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에디슨과 테슬라의 인생행로가 엇갈린다. 발명가이면서도 경영인의 자질을 갖고 있던 에디슨은 자금을 모으고 특허를 등록하며 언론을 이용하는 데 천부적인 감각을 뽐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멘로파크 연구소를 지어 연구원들의 성과를 도용했다는 지적을 받지만, 에디슨은 기업이 설립하는 연구소의 모범 사례로도 손꼽힌다.
테슬라는 에디슨과 한참 달랐다. 나쁜 말로는 세상 물정을 몰랐다. ‘전류 전쟁’의 동지였던 웨스팅하우스사가 경영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출의 일정액을 특허료(로열티)로 내야 한다는 계약서를 찢어버린 적도 있다. 특허에 매달리고 분쟁을 마다치 않았던 에디슨과 달리 기술과 특허를 공유하려던 그는 홀로 연구비를 대느라 부채에 시달렸다. 1943년 1월 7일 뉴요커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때도 빚더미 상태였다.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가난 속에서 죽은 그의 이름은 갈수록 빛난다. 자금 부족과 에디슨의 방해로 세인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그의 발명 목록에는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만한 아이디어가 넘친다. 전 세계에 공짜로 제공되는 무제한의 에너지와 인공번개 개발, 원거리 통신, 원격제어 어뢰, 살인광선, 연료전지 자동차, 기후 조종 등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구축함을 400㎞나 순간 이동시켰다는 ‘필라델피아 실험’을 주도했다는 주장도 있다.
사망 102주기를 맞는 테슬라의 천재성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으나 발 빠른 기업은 전설의 효과를 등에 업고 기술 혁신과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자연인 테슬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는 이미 우리 앞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올해 한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란다.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국내에서도 질주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테슬라 뿐 아니다. 유럽과 일본은 물론 중국의 전기차 업체까지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위기이자 힘을 키울 기회다. 단계적으로 순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인 국내 메이커가 전기차의 선두 주자인 테슬라와 경쟁해 이긴다면 내수시장 방어를 넘어 또 하나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분발을 바란다./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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