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이 후배 선수 황우만을 폭행한 사건으로 한국 스포츠가 또 한 번 치부를 드러냈다. 올림픽의 해 벽두에 터져 나온 터라 충격은 더 컸다.
그에 앞서 지난해 9월 남자 쇼트트랙의 신다운은 대표팀 훈련 도중 후배를 폭행해 2015∼2016시즌 대회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최근에는 루지대표팀 선수가 코치의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은 일도 알려졌다.
이들 사안은 단순한 폭력이 아닌 스포츠 인권 침해의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피해 선수는 신체의 고통과 함께 씻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거의 모든 폭력이 인권 경시에서 나오지만 체육계의 폭력은 상황이 다소 특수하다. 지도자와 학생, 선배와 후배 사이에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남아 있어 인권 유린에 저항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폭력 등 스포츠 인권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엘리트주의와 성적지상주의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소수의 대표선수를 선발하고 집중투자하는 엘리트주의는 성적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인권 침해를 폭로하지 못하고 폭력이나 비인격적 대우, 혹독한 훈련에 침묵하는 부작용이 내재한다. 이는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무마되는, 결과에만 광적으로 집착하는 성적지상주의의 산물이다.
성적지상주의는 황금만능주의와 연결된다. 급속한 산업화에서 나타난 물질주의는 스포츠 영역에도 침범했다. 한국 스포츠의 성장은 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해왔다. 그러나 자본이 스포츠를 접수하면서 돈이 스포츠맨십을 위협하는 상황을 맞았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폭력, 승부 조작, 약물 복용, 금품과 병역 비리 등이 사례이다.
스포츠 인권에 관한 관심은 과거에 비해 커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4년 1월 폭력, 승부 조작 및 편파 판정, 입시 비리, 조직 사유화를 스포츠 분야의 4대 악으로 지목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릇된 관행이나 악습의 제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포츠 인권에 대한 조기 교육과 원천적인 예방책 마련이다. 미국 고등학교체육연맹(NFHS)은 학교 운동부에서 폭력이나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도록 피해야 할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지도자와 학생 간 서약서를 만드는 등 지도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체육계에서는 엘리트 체육(대한체육회)과 생활 체육(국민생활체육회)의 대통합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효율성과 체육 발전의 시너지라는 통합 취지와 더불어 스포츠 인권 보호 분야에도 큰 비중을 두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체육 인권 침해는 선수들의 인성과 창의성을 망친다. 세계 스포츠계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 없이 체력과 투지만으로는 통하기 힘들어지는 추세다. 스포츠 인권 강국이 진정한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문화레저부 박민영 차장 my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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