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가 1억원이라는 큰 돈을 기부하는데 왜 한 번이라도 망설이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기부하고 나니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행복을 느꼈습니다."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길광준(64·사진)씨는 돈으로 누리는 순간적 만족이 기부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느끼는 성취감에 비할 바가 못 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웠다. 지난해 10월 900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쾌척한 직후 주변에서 은퇴를 앞둔 봉급생활자의 지나친 과시욕 아니냐는 일부 불편한 시선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973년 육군장교로 임관해 1997년 중령으로 예편한 후 경기 의정부에 위치한 주한미군 제1지역 사령부에서 민사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40여년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노후를 걱정해야 할 때 거금을 기부하면서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하지만 은퇴 후 살림이 더 빠듯해지면 남을 돕기가 어려울 것 같아 기부를 결심했고 후회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은퇴자금을 뚝 떼어 기부한 후 한동안 부인과 갈등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나눔철학에 동감하고 격려해준다. 1억원 기부는 그동안 수년간 이어왔던 나눔의 연장선이다. 미군에서 민군 행정·민원의 중간 창구 역할을 해왔던 덕에 지역 내 소외계층의 고된 삶에도 눈을 떴다. 그는 문산의 한 교회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아프리카 불법체류자를 돕고 10년 넘게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모든 일에 열심이던 한 나이지리아 청년을 '아들'이라고 부르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는데 그 청년이 결혼하기 위해 자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부자(父子)의 연을 맺기도 했지요."
봉직하면서 얻는 지식도 나누고 있다. 1995년부터 10여년 동안 자신이 출간한 책과 콘텐츠를 이제 개인 블로그 '길광준의 청단풍집'을 통해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 것. '사진으로 읽은 한국전쟁' 등 주로 미군 역사, 미국 전쟁사 등을 다루고 있다. 그는 "이미 출간한 책들의 판권도 출판사로부터 다시 회수해 블로그에 공개했다"며 "책이 필요한 누구나 손쉽게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재능기부인 셈"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나눔의 행복을 계속 느끼는 것이 새해 바람이다. 그는 "나눔은 해보지 않고는 그 행복의 크기를 상상할 수 없다"며 "경제적으로 풍요·빈곤을 떠나 기부를 망설이고 있다면 꼭 해보고 그 행복을 만끽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나눔 이후 스스로 '적어도 이 세상 존재해서는 안될 그런 사람은 아니다'라는 자신감마저 든다"며 "나눔에 동참해보라"고 조언했다.
조만간 은퇴 후 여행하면서 인생 후반부를 펼치겠다는 그는 "오늘이 어제보다 더 값지기에 새해라고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내일만 생각하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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