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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한 번 들어간 직장을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여성 개인의 자아실현뿐 아니라 가계와 기업·정부 모두를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만드는 초석이 된다. 그러한 까닭에 북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여성의 경력 유지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 또한 각종 정책을 뿌리내리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출산과 양육의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관행과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장시간 근로는 제도가 현장에서 안착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준다.
지난 2014년부터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해온 '여성의 경력 유지를 위한 정책 현장 모니터링'은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현장밀착형 정책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그해 각 지역을 발로 뛰면서 근로자와 기업의 목소리를 들은 결과 육아휴직 대체인력의 지원기간 연장, 자동 육아휴직 확산, 육아휴직 후 복귀 프로그램 마련 등 다양한 개선 과제를 도출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에는 한국 사회의 성장동력인 창조경제 분야에서 젊은 여성인력들의 진출이 많은 데 비해 경력 유지가 어렵다고 알려진 문화 콘텐츠 분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그리고 산업현장의 연구개발(R&D) 기술 인력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했다.
모니터링단에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원들뿐 아니라 여가부·문화체육관광부·산업통상자원부·미래창조과학부·고용노동부의 담당 공무원들과 현장 전문가, 단체 및 협회들이 함께 참여했다. 문화 콘텐츠 중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의 분야에서는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지만 1년 미만 경력자가 19%, 1~3년 미만 경력자가 35%로 전체의 반 이상이 3년 미만의 경력을 갖고 있다. 출산·육아를 하면서 일을 계속하는 여성의 비중은 극히 낮았다. 숙련도 정도가 중요한 R&D 분야나 ICT 분야에서도 여성 인력의 짧은 근무 기간은 여성들의 핵심 인력화를 제한하고 있었다.
모니터링 결과 문화 콘텐츠나 ICT와 같이 근로시간이 유연한 업무 방식이 적합한 분야에서는 여성들이 보다 유연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과 프로젝트가 없는 기간에 훈련을 받아 업무역량을 더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었다.
새해에도 정부의 정책 개선은 계속된다. '아빠의 달' 지원이 3개월로 확대되며 맞춤형 자녀 양육 등으로 취업한 부모의 양육 부담 완화 등 변화가 예고돼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제도만이 답이 아니다. 여성들이 각 산업 현장에서 이러한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앞서 언급한 모니터링 결과는 잘 보여준다.
여성의 경력 유지와 일·가정 양립 문제는 정부의 제도적 노력과 함께 기업의 참여가 중요하다. 여성이 처음 경력 단절을 겪는 평균 27세와 노동 시장에 돌아와 재취업하는 평균 37세 사이의 간극 문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각각의 산업 현장에서 제도가 안착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기업과 조직의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근로자의 권리이며 사회를 유지하는 지름길임을 기업들은 인지해야 하고 더 이상 여성의 경력 단절로 개인과 기업·국가에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유연 근무로 생산성을 높이고 업무에서 공정하게 성과를 평가받으며 모든 근로자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함께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선진 사회를 기대해본다.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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