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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극복 호주의 교훈] 20년전 '물안보' 외친 호주, 치수기본법 아직 못만든 한국

<1> 물, 이제 환경이 아닌 안보다

호주 시드니 타롱가 동물원
호주 시드니의 타롱가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기린 뒤로 오페라하우스 등 도심 건물들이 보이고 있다. 지난 1996년 개장한 타롱가동물원은 '호주를 깨끗이 하자(Clean up Australia)'는 정책 아래 빗물저장탱크, 물 재활용 시설 등을 설치해 연간 1억ℓ의 물을 절약하고 있다.
/사진=강동효기자


濠, 농공업용수 사고파는 워터마켓규모 年 2조5,000억원

물효율을 정책 최우선에 두는 '국가 물 이니셔티브' 발표도

한국 물 인식 낙제점… 1인당 수자원량 153개국 중 129위

관리체계 통합해 중복정책 막고 물산업 수출플랫폼 구축을


'물이 부족한 곳이라면 어떤 체계이든 워터마켓이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호주는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처럼 물을 많이 소비하는 농공업 종사자에게 물을 할당해 사고팔도록 하는 '워터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80년대부터 '워터마켓' 개념을 부분적으로 도입해왔고 2007년까지 적용 대상과 관련 규정 등을 지속적으로 변경하며 발전시켰다. 2007년 이후부터는 호주 전역에 걸쳐 '워터마켓'이 활성화되고 있다.

물이 부족한 농부나 공장주들은 물을 판매할 의사가 있는 농공업 관계자들로부터 물 이용권을 사들이면 된다. 물을 절약한 농부나 공장주는 자신들이 사용하고 남은 물을 판매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 워터마켓은 현재 연간 거래금액만 30억호주달러(2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호주의 물 정책 자문기구인 연방물위원회(NWC)는 "워터마켓이 도입되면서 농부와 공업 관계자들은 가뭄과 같은 물 부족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고 수자원 고갈에 대한 우려도 줄었다"며 "워터마켓은 연간 수십억달러의 효용가치를 증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호주가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워터마켓'을 보유하게 된 것은 물에 대한 국가적 패러다임을 빨리 전환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 세계 주요국가들이 물에 대해 갖고 있던 개념은 '깨끗한 물을 국민에게 안전하게 공급하는 것'이었다. 수질과 환경이 물과 관련한 가장 큰 이슈였다. 호주는 하지만 12년간의 오랜 가뭄을 겪으면서 1990년대에 '물 안보' 개념을 도입한 주요 정책들을 내놓았다. 1994년 모든 주정부가 참여한 가운데 물 개혁 방안들을 마련했고 10년 뒤 '국가 물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물 이니셔티브는 물 효율을 최우선순위에 둔다는 정책적 선언으로 이후 모든 물 관련 정책들은 효율성 원칙에 따라 결정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물 안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은 1,453㎥로 통계 예측이 가능한 153개국 가운데 129위 수준이다. 이웃 나라 일본(3,362㎥)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는 좁은 국토에 인구가 밀집한데다 계절별 강수량 편차가 심해 이용 가능한 물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물빈곤지수(WPI)도 높은 편이다. 영국 생태환경·수문학센터는 1인당 가용 수자원량, 수자원 접근율, 물 이용량 등을 고려해 물빈곤지수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전체 147개국 가운데 43위 수준이다.

물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물의 이용과 관리를 통합한 '물관리기본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수자원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호주의 '물 이니셔티브'처럼 물관리기본법을 통해 물의 효율적 이용과 배분원칙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관리기본법은 1997년 이후 무려 6차례나 국회 안건으로 올려졌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정치권의 의지가 약한데다 부처 간 이견도 컸기 때문이다.

물관리기본법은 물 관련 법안들의 질서를 잡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물의 이용과 배분·관리에 대한 법안이 여러 부처의 행정적 필요에 의해 제각각 제정되면서 통합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하천법·농어촌정비법·환경정책기본법·수도법 등 물 관련 법안만 20개가 넘는다. 관할 부처도 제각각이다. 하천법·지하수법 등은 국토교통부 소관이며 농어업재해대책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무부처다. 또 수도법은 환경부가 담당하며 저수지·댐의 안전관리 및 재해 예방에 관한 법률은 국민안전처의 몫이다.

물관리기본법을 제정하면 물 관련 조직체계를 통합해 부처 간 중복정책이 난립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또 통합 물관리도 가능해진다. 통합 물관리는 수량·수질·생태 등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물 효율에 맞춰 통합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하천의 경우 현재처럼 행정구역을 구분해 정책을 펴기보다는 상·하류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관리하고 기능별·부처별로 나뉘어진 수자원 시설을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다. 윤용남 고려대 명예교수는 "물관리 기본원칙과 기본계획, 물의 보호·이용·개발에 대한 내용을 물관리기본법에 담아 제정한다면 여러 수자원을 목적에 맞게 통합관리할 수 있으며 물 정책이 보다 개방적이고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관리기본법과 더불어 산업 수출에 특화된 정부 지원체계도 필요하다. 물 산업은 21세기 블루칩으로 각국의 관심을 받고 있다. 워터리소시스그룹에 따르면 오는 2030년께 전 세계 인구 3분의1이 물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헬무트카이저컨설팅은 2025년께 상하수도, 해수 담수화 등 물 산업 규모가 4,070억달러(48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 시장을 선점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네덜란드는 수자원 수출에 적극적이다. 2002년 상하수도 중심의 물 산업 개념에서 탈피했고 간척지 개발과 관리, 생태 복원 등 물 관련 분야를 통합한 '델타기술' 전략을 앞세워 아시아·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호주 역시 정부와 민간이 합세해 물 수요관리 정책 등 우수한 경험을 미국에 전수하며 물 산업의 선두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도 워터클러스터 등을 중심으로 수자원 기술 수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8개의 글로벌 물 기업을 육성해 세계 물 시장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물 산업 육성전략'을 세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K-water와 건설 업체를 중심으로 수력개발과 정보통신(IT) 기반의 스마트워터 부문 등을 수출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체계화된 지원이 없는 상황이다. 전경수 성균관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해외 물 시장 진출 규모는 세계 시장의 0.3%에 불과하다"며 "물 산업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상·하수도 위주의 물 시장 접근에서 탈피해 대체수자원이 포함된 물 산업을 개념화하고 정부·지방자치단체·민간기업·시민단체 등이 모두 참여한 통합 플랫폼을 꾸려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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