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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를 말끔히 씻어준 공연.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첫 정기공연을 본 음악 애호가들의 평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정도지 않을까.
사실 연주회가 열리기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세간의 시선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있었다. 시향을 지난 10년간 이끌어온 정명훈(63) 전 예술감독이 지난해 연말 급작스럽게 사임하고 당초 계획된 9일 공연마저 지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엎친 데 덮친 격 오케스트라의 핵심 멤버인 스베틀린 루세브 악장마저 사의를 밝혔다. 연주회가 열리기 5일 전인 4일에야 대체 지휘자로 독일의 거장 크리스토프 에센바흐(75)가 결정됐지만, 급하게 지휘자가 바뀐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관객들의 마음은 불편했다. 악장조차 없이 공연을 올려야 하는 시향 측은 거물 지휘자를 초청하고도 티켓 값을 50% 가까이 하향 조정했다.
이처럼 수많은 불안 요소를 안고 시작한 9일의 공연.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28)이 협연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겨울 추위를 녹이는 이른 봄 햇살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새가 지저귀는 듯 가볍고 투명한 연주가 관객들의 마음을 조금씩 풀어놓았다. 최예은은 자신과 꼭 어울리는 윤이상의 '작은 새'를 앙코르로 들려주며 산뜻한 마무리를 지었다. 이어진 메인 프로그램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서울시향의 지난 10년간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단박에 깨닫게 해주었다. 관객들은 선명하고 웅장한 브루크너에 금세 빠져들었고, 심취한 나머지 악장 간 박수까지 터져 나올 정도였다. 깊이 몰입한 2,300여명의 관객들은 3악장 연주 종료 후의 마지막 여운까지 완전히 즐긴 후 아낌없는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냈다. 포스트 정명훈에 대한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을 훨훨 날려버리게끔 해준데 대한 찬사이자 외적 흔들림에도 굴하지 않고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준 시향에 대한 고마움이 듬뿍 담겨있는 박수였다. 이날의 공연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서울시향의 홀로서기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리라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패키지를 취소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감상평이 쏟아졌다. 물론 거장 에센바흐의 도움이 적지 않았겠지만 지휘자가 7일 오후 입국해 만 이틀이 안 되는 동안 호흡을 맞췄다는 점을 볼 때 성공의 공은 서울시향 단원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예술감독 자리가 공석인 서울시향은 현재 최수열 부지휘자를 중심으로 연습과 공연을 진행 중이다. 시향 측은 " 조만간 대표이사 자문기구인 '지휘자 발굴 위원회'를 구성해 정 전 감독의 후임을 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6,17일에 있을 정기공연 지휘자는 11일께 공지할 계획이다. /김경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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