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장년을 막론하고 모든 계층에 안정된 일자리에 대한 소망이 요즘처럼 간절한 때가 있었을까. 불황이 깊어지고 불경기가 길어짐에 따라 일자리 경쟁은 세대 간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 엔진인 제조업 부문에 적색등이 켜지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들도 들리고 있어 새해 벽두를 두르는 색감이 어둡기만 하다.
일자리 정책은 항상 '더 많은, 더 좋은(the more, the better)'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해야 하지만 요즘과 같은 저성장-저고용 시대에는 정책의 일차적 목표를 일단 '더 좋은(질)'보다 '더 많은(양)'에 맞춰야 한다. 비정규직 고용 및 인력 파견과 관련된 고용노동 관련법 개정도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이룰 수 있다면 일단 추진하고 향후 질적인 보완 조치들을 해나가는 방향으로 노사정이 양보와 타협을 이뤄야 할 것이다. 고용의 양과 질을 동시에 늘리고 올릴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기업의 신규 투자가 극히 저조하고 내수가 좀체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는 불확실 시장에서는 일자리의 질은 고사하고 양 자체도 늘어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덜 좋은 일자리라도 없는 일자리보다는 낫다는 현실 인식을 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고용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여기에 노와 사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용의 총량을 늘릴 것인가. 무엇보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최우선 추진 과제가 돼야 한다. 연간 2,000시간이 넘는 최장 시간 근로를 하는 우리 노동 시장은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43.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7시간)에 비해 6시간 이상 길다. 한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풀타임 근로자들의 초과 근로가 단축되고 그 단축분만큼 모두 추가 고용으로 이어진다면 2014년 기준 최대 약 400만명의 추가적 고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우리 노동 시장의 장시간 근로가 선진국 수준으로 줄어들고 시간제 일자리 등 다양한 고용 형태가 갖춰졌다면 우리는 이미 고용률 70%를 달성한 것이 된다는 계산이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과 청년층 인력의 낮은 취업률과 중년층 인력의 조기 퇴직 등을 고려할 때 이는 놀라운 수치이다. 그만큼 우리 노동 시장은 아직도 상대적으로 소수(남성·가장)의 참여자가 장시간 근로를 하고 그 소수의 근로소득에 의지해 전체 가계 경제가 꾸려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가.
근로시간 단축은 그러나 노사 양측이 회피하는 선택이다. 사용자 측은 노동비용 증가 및 생산량 감소를 두려워하고 노동조합 측은 소득 감소를 우려한다. 양측의 우려를 동시에 해소하고 근로시간 단축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생산성 향상이다. 노사가 생산성 향상으로 근로시간은 줄이면서 생산량과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고 협력한다면 양측 모두에 윈윈의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시간당 생산성이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에 속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지난 2012년 구매력기준 30.4달러로 독일(59.2달러), 네덜란드(60.4달러)의 약 50% 수준이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이는 거꾸로 그만큼 단위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해 생산성 향상을 동반하는 근로시간 단축은 향후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 어젠다가 돼야 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새해 새로운 일자리 희망을 지피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 시장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자가 점검하고 고칠 것은 과감하게 고쳐나가는 결단과 선택이 필요하다. 장시간 근로 해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시간제 등의 고용 형태 다양화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는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할 최소한의 과제다. 어두운 세계 경제 환경에서 경직된 고용 관계와 노동시장 법·제도를 개혁할 생각 없이 청년과 베이비붐 세대의 일자리 문제 해소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전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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