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외환보유액이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최후의 방어벽으로 이미 부족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경고가 속출하고 있다. 고갈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데다 3조3,300억달러 가운데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이 얼마나 되는지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서투른 정책에 외국인 자금 유출이 가속화하면서 외환보유액이 2조달러대로 줄어들 경우 중국 금융시장이 대형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외환보유액이 최근 시장 혼란과 위안화 가치 절하, 대규모 자본 유출 등을 막는 데 불충분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최대 우려 요인은 외환보유액 증발 속도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5,130억달러나 감소하며 지난 1992년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했다. 외국인 자본 유출과 위안화 약세로 금융시장이 불안하자 외환보유액을 풀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한 결과다.
또 지금과 달리 유로화와 엔화가 약세로 전환될 경우 해당국 통화 표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외환보유액은 더 줄게 된다. 특히 남아 있는 외환보유액이 위기 때 동원 가능한 '실탄'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블룸버그는 "미국 재무부 자료를 통해 중국이 지난해 10월 현재 1조2,500억달러어치의 미 국채를 보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 외에 나머지는 중국의 국가 기밀"이라며 "외환보유액 일부는 팔기 어려워 유동성이 낮거나 숨겨진 손실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수백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투자했고 나중에 석유를 현물로 받는 조건으로 베네수엘라 등 자원수출국에 대출해줬다. 이 역시 당장 현금화가 어려운 자금들이다.
또 하나의 외화 부족 뇌관은 기업 등의 일상적인 달러 수요다. 하오홍 교통은행 수석 중국전략가는 "중국은 수입제품 결제에 필요한 다양한 외화 표시 채무를 보장해야 한다"며 "외환보유액 가운데 2조8,000억달러는 이미 외화부채 보증을 위해 쓰이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중국의 '가용 외환보유액'이 공식 발표치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것이다.
한국도 1997년 외환위기 때 장기 해외채권까지 외환보유액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위기 때 쓸 수 있는 자금은 72억달러에 불과했다. 물론 중국이 외화부족 사태에 빠질 수 있다는 의견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시장 투명성 개선에다 중국 정부가 불법 외화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 인민은행의 섣부른 시장개입으로 앞으로도 외환보유액이 급감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8월 이후 수출 촉진을 위해 전격적인 위안화 절하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환차손을 우려해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이번에는 외환보유액을 통해 위안화 가치를 방어하고 있다. 또 증시 폭락에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한 것도 투자가 불안감만 키우면서 투매 사태를 부채질하고 있다.
외국인 자본 이탈과 급격한 위안화 절하를 막기 위한 시장개입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셈이다. 민간은행인 싱가포르은행의 리처드 제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외환보유액이 2조달러대로 떨어지면 시장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