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시간 지하철 통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갑자기 양쪽으로 갈라졌다. 한 가운데 선 노숙인이 행인들을 노려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인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하면서 노숙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정면으로 맞닥뜨리면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는 일종의 불안감 탓이다. 노숙인들은 맹렬한 추위를 피해 지하철 역사를 터전으로 삼는다. 단연 서울역이 1순위다. 2~3명씩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소주를 나눠 마시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경찰이 단속을 나서면 노숙인들은 서울역을 배회하거나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긴다. 그랬다가 어느새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곳곳에 쉼터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띄지만, 시설로 들어가자는 권유에 막상 따라나서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서울시가 2017년 완공 예정인 서울역고가공원 관리 인력으로 노숙인 채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재활 프로그램을 성실히 수료한 노숙인을 정원사와 안내, 경비인력으로 채용해 자활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역의 위생, 이미지 개선과 동시에 사실상 손 대기 힘들던 노숙인 관리 문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 표명인 셈이다. 지난해 9월 열린 ‘함께서울 정책박람회’에서 서울시민이 제안한 정책 아이디어가 채택된 것이다. 물론 서울역고가공원 완공 후의 일이니 지금 당장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이라 얘기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하지만 계획대로만 된다면 분명 ‘빅이슈’에 버금가는 재활 프로그램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역의 골칫거리였던 노숙인이 서울역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일조하게 되면 정책홍보 효과도 클 테고.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전제조건인 ‘자활 의지’ 말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쉼터 입소를 권유해도 ‘거리에서의 삶’을 쉽게 청산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자아발견, 웃음치료, 취업특강, 채용박람회 등 노숙인 입장에서는 이래라 저래라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라는데, 기존의 재활센터와 다를 바 없는 서울시의 새 정책이 과연 실효성 있을지 우려스럽다. 서울시는 올 상반기부터 녹지관리와 인문학 등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숙인 문제의 본질은 ‘자활의지 없는 노숙인’이다. 길거리 생활을 청산할 마음이 있다면 지금도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의 새 정책이 의미를 가지려면 자활 의지 없는 노숙인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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