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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존재감, 관객을 삼키다-뮤지컬 '레베카'의 장은아

뮤지컬 ‘레베카’서 ‘댄버스 부인’역 맡아 열연

건강 상 중도하차 배우 대신해 긴급 투입

“늦은 합류로 걱정-첫공 끝내고 눈물”

9년간 무명 가수, 그 시절 간절함 담아 열정 쏟아

“레베카 통해 무대에 좀 더 힘 있게 서고 싶어”

‘저 여자 정말 대박!’ ‘미친 것 같아’

지난 12일 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폭발하는 광기(狂氣)와 강렬한 노래는 관객을 집어삼켰다. 뮤지컬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장은아(사진)는 그렇게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첫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큰 실수 없이 끝낸 것에 감사할 뿐이에요.” 그간의 마음고생을 담은 솔직담백한 소감이었다. 장은아는 이번 레베카 공연의 ‘새 얼굴’로 긴급 투입됐다. 다른 배우가 건강 문제로 중도 하차하면서 제작사로부터 급하게 오디션 요청을 받은 것. 평소 레베카를 좋아해 주요 곡을 연습해두었던 그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문제는 캐스팅 이후였다. “늦게 합류해 다른 배우와 합을 맞출 기회도 적었고, 혼자 연습한 시간이 많았어요. 걱정이 컸죠.” 첫 공연을 마친 그는 커튼콜 때 끝내 눈물을 보였다. 온몸을 짓누르던 긴장이 안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댄버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귀족 저택의 집사인 댄버스는 주인의 전 부인 ‘레베카’에 집착하며 새 아내인 ‘나’를 위협하는 인물이다. 옥주현·리사 등 실력파 배우가 교과서처럼 만들어 놓은 캐릭터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장은아는 “선배들이 워낙 훌륭하게 연기했던 터라 나만의 노선을 잡는 것이 필요했다”며 “원작 소설을 읽으며 색다른 모습이 아닌 ‘원작에 충실한 댄버스’를 그리는 데 방점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강약조절이다. “댄버스 부인은 처음엔 친절한 듯하다가 서서히 ‘나’를 밀어내려는 본심을 드러내요. 그 지점이 2막 1장인데, 실체가 폭발하는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전후 연기와 노래의 톤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2막 1장은 선 굵은 음성의 댄버스 부인과 청아한 목소리의 ‘나’가 ‘레베카’를 부르며 대립하는 이 작품의 백미다. 톤부터 다른 두 목소리가 노래로 팽팽하게 대립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180도 회전하는 발코니 세트가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를 만들어낸다.





치열한 고민은 무대 위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 작품의 대표 넘버 ‘레베카’는 극 중 네 번 리프리즈(reprise·변주되어 반복)된다. 장은아가 부른 네 번의 레베카는 상황에 따라 다른 강도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움·분노·절망… 하나의 노래로 결 다른 4개의 광기를 선보였다.

지금 무대에서 쏟아내는 열정 속엔 무명 시절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 “뮤지컬 데뷔 전 9년간 무명 가수였어요. 열심히 했는데 기회가 없었고, 늘 무대에 대한 갈증이 컸죠.” 노래를 놓으려던 순간 만난 게 뮤지컬이었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를 계기로 2012년 ‘광화문 연가’에 출연한 이후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더데빌, 서편제, 머더 발라드 등에 잇따라 캐스팅되며 뮤지컬 배우로의 입지를 다졌다.

앞으로 해야 할, 하고 싶은 작품이 더 많다는 장은아. 그는 “4년이라는 경력에 비해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은 분명 과분한 역”이라며 “부족하지만, 이번 작품을 계기로 무대에 좀 더 힘 있게 설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겠다”고 전했다.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권욱기자 ukkw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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