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흑조 두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영화는 발레단 연출자 르로이(뱅상 카셀)가 무용수들에게 관능적으로 재해석한 ‘백조의 호수’를 무대에 올리겠다고 발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르로이는 “백조여왕을 새로 뽑을 거야.…여러분 중에 누가 백조와 흑조 두 가지 연기를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주역이 되길 열망한 니나는 르로이의 방까지 찾아가 자신을 뽑아줄 것을 청한다. 완벽한 프리마돈나라는 찬사를 받았던 전임 주역(위노나 라이더)의 기운을 받으려는 욕심에 그녀의 립스틱과 귀고리를 훔치기도 한다. 그토록 원했던 프리마돈나, 그러나 니나는 주역 자리를 따내고도 행복하기는커녕 막막하기만 하다.
#‘엄친딸’로 자란 것이 니나의 한계
무엇보다 자신이 ‘엄친딸’로 자랐다는 것이 그녀의 한계이자 난점이다. 젊은 시절 최고의 ‘백조 여왕’이 되길 꿈꿨으나 니나를 임신하면서 그 꿈을 접은 어머니(바바라 허쉬)는 자신의 못다한 꿈을 딸이 이뤄주길 바라면서 니나를 엄격하게 키운다. 그러고 보면 백조로 키워진 니나에게 관능적이고 사악한 흑조를 연기하라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렇지만 관능적인 ‘백조의 호수’를 기획한 르로이는 니나를 강하게 압박한다. 르로이는 발레 연습을 하면서 “욕망을 분출하라”며 호되게 몰아치면서 “자기 스스로에서 벗어나야해. 넌 도전하지 않아”, “넌 재능은 있지만 너무 겁쟁이야”라고 꾸짖는다. 심지어 “유혹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막말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폭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공연이 다가올수록 강박은 커져가고
공연 날이 다가올수록 니나의 강박은 커져만 간다. 특히 신입 발레리나 릴리(밀라 쿠니스)는 니나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온다. 실력이라면 니나에 못미치지만 매혹적인 섹슈얼리티로 흑조 연기에서만은 독보적인 릴리다. 그런 릴리가 흑조의 대역으로까지 뽑힌다. 급기야 니나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그녀(릴리)가 나를 해치려 해요. 내 자리를 노려요”라고 울부짖는 지경에 이른다.
니나의 정신적 분열은 백조의 심성을 가지고 흑조까지 연기해야 하는 ‘불가능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일을 갑자기 현실에서 접하게 되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국내 기업 사이에 ‘블랙스완 공포’ 확산
경제학에도 블랙스완이라는 용어가 있다.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일이 발생하는 상황’을 지칭한다. IT산업의 물줄기를 바꾼 아이폰과 구글의 출현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 등이 바로 블랙스완에 해당된다. 특히 2007년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가 ‘블랙스완’이라는 책에서 예견했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2008년에 실제로 발생하고 나서는 블랙스완이 몹시 불길한 징조를 뜻하는 용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요즘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블랙스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주요기업의 오너와 최고경영자(CEO)들의 신년사부터가 두려움 일색이다. 삼성전자의 권오현 부회장은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경쟁해야 한다”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블랙스완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백조’ 니나의 내면에도 ‘흑조’의 본능이…
블랙스완 공포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블랙스완’의 저자 탈레브는 또 다른 책에서 몇 가지 블랙스완 생존법을 제시했다. ‘이기려 말고 실수를 피하라’, ‘낙관을 경계하라’, ‘경험을 믿어라’ 등이다.
역시 관건은 시련을 이겨내려는 주체의 의지가 아닐까 싶다. 고난을 이겨낼 해법을 밖에서 찾을 수도 있겠으나, 보다 근원적인 힘은 내면에 잠재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화 ‘블랙스완’의 주인공 니나도 백조로 키워졌지만 탐욕스런 성취욕과 잔혹한 질투심이 가슴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우아하게만 보였던 ‘백조의 여왕’ 니나도 이미 그 안에 흑조의 본성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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