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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환율전쟁을 촉발했던 유럽과 일본의 '환율 떨어뜨리기' 전략이 거의 한계 상황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발 금융불안, 신흥국의 경기둔화와 외국인 자금유출 등의 여파에다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환율전쟁에 참가하면서 유로화·엔화 가치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최근 엔화 가치는 미국 달러화 대비 4개월반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고 유로화도 무역가중지수 기준으로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이 추가 양적완화나 기준금리 인하를 준비하고 있는 반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최소 두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되는데도 엔화·유로화 가치가 오히려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는 "통화가치를 낮춰 물가를 올리고 수출촉진을 통해 성장을 부양하려던 유럽과 일본의 계획이 어긋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국제선물시장에서 엔화 매수 계약 규모가 매도 규모를 3년 만에 추월했다. 유로화와 달러화 가치가 같아지는 패리티가 연내 발생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늘고 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올해 유로화 가치가 현재 유로당 1.09달러에서 1.03달러 수준으로 하락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일본·유럽은 물론 주요국들이 금리 인하 등을 통해 통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는데다 최근 금융시장 요동에 투자가들도 안전자산인 유로화·엔화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지난해 43개 중앙은행이 통화완화 정책을 내놓았다"며 "모두가 참여할 경우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된다"고 설명했다.
유럽·일본의 돈 풀기가 외환시장에서 식상한 재료가 된 것도 근본적인 이유로 꼽힌다. ECB는 지난해 12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내놓았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에 유로화 가치가 하루 기준으로 7년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헤지펀드 업체인 SLJ매크로의 스티븐 젠 설립자는 "중앙은행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 이제 더 이상 시장에 충격을 주지 못하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양적완화와 엔화 약세를 양대 무기로 삼아 디플레이션 탈출을 시도해온 일본은 비상이 걸렸다. 엔화 강세로 아베노믹스가 좌초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일본의 자본 지출을 이끄는 기계주문은 지난해 11월 전월 대비 14.4%나 급감하며 전문가 예상치인 7.9% 감소를 크게 밑돌았다. 일본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며 올 들어 닛케이지수는 14일 현재 9.4%나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이날 "금융시장 불안과 중국 경기 둔화로 아베 정부가 엔저를 유지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제조업들이 아베노믹스의 성패에 달린 임금 인상과 투자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엔화 강세와 금융시장 급변동에 실적둔화 우려가 큰 탓이다.
이처럼 환율전쟁을 통한 경기부양책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만 유럽·일본의 통화완화 정책은 앞으로 더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이주미 데발리에르 HSBC 이코노미스트는 "엔화 가치가 달러당 110엔까지 오르면 BOJ가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CB도 유로화 가치가 더 상승하면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여러 차례 "유로화는 물가 안정과 성장을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영국도 환율전쟁에 참전하면서 올해 상반기 내에는 기준금리 인상이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많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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