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과 주거지의 분리는 우리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우선 시신에 대한 존중이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것이다. 위생적인 문제도 있다. 부패는 건강에 좋지 않다. 산이 많은 지형적 특성상 산에 무덤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당연히 평지에 산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조선시대 한양도성 안에는 무덤이 없었다. 모든 시신은 성 밖으로 나갔고 이용된 성문도 구별했다. 바로 광희문(光熙門)인데 속칭 남소문(南小門), 시신이 나가는 문이라고 해서 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불렸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급한 나머지 이 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달아났다고 해서 비웃음을 받았다. 원래는 사진 오른쪽 도로 한가운데에 있었다. 1976년 복원하면서 현 위치로 옮겼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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