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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PD의 Cinessay] 갑작스런 흑인 사위에 흔들린 소신

●초대받지 않은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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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너나 잘하세요'라는 유행어가 있었는데, 비아냥만 뺀다면 참으로 명언이라는 생각이 이 듭니다. 세상 모든 일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옳은 말만 하는 이른바, '소신(所信)과잉자'들이 넘쳐납니다. 책임지지 않는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거야 누가 못하겠습니까.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에 우리는 자주 비분강개합니다. 하지만, 사소하게라도 나의 이해와 얽히거나 내가 당하는 일이 되버리면 마음이 싹 달라집니다.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서도 내 집값은 오르기를 바라고 학연, 지연이 사회를 망친다고 개탄하지만 '힘써줄 지인' 만들기에 정성을 다합니다. '소신'이 가치를 발하려면 나와 남에게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야하는데 왠만한 인격자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년작,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주인공 매트(스펜서 트레이시)도 딸의 결혼문제만 아니었다면 평생 존경받는 언론인으로 소신있게 살았을겁니다.

흑백차별이 엄연히 남아있던 1960년대, 매트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기 때문에 차별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한다'는 소신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부인 크리스티나(캐서린 헵번)도 남편과 뜻이 같은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금쪽같은 외동딸 조애나가 여행 중 만난 존(시드니 포이티에)과 결혼하겠다고 찾아옵니다. 존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유명한 의사에 멋진 외모, 따뜻한 인성 등 어디 내놔도 흠잡을 부분이 없습니다. 상처한 '흑인'이라는 것만 빼면! 세상 모든 사람을 계몽하며 실생활에서도 흑인을 평등하게 대했던 매트지만 막상 내 딸이 흑인을 데리고오자 얼음처럼 표정이 굳어버립니다. 사람을 시켜서 존의 뒷조사를 하고 괜한 화를 버럭버럭 냅니다. 매트의 진보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딸은 "지금까지 아버지가 보여준 소신은 무엇이었느냐"며 반발합니다. 이웃들은 호기심 반 적개심 반의 시선으로 매트를 신경쓰이게 하고 엉겁결에 초대받아온 존의 부모도 백인과의 결혼은 몇몇 주에서는 불법이라며 강하게 반대합니다. 아침까지도 흔들림 없었던 매트의 소신이 갑자기 뿌리부터 시험대에 오른 총체적 난국을 맞게 되는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빛이 나는 것은 역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크리스티나도 흑인 사위감을 보고 당황하긴 했지만 두사람의 진정성을 알고는 남편을 설득합니다, 우리도 젊은 시절, 얼마나 사랑이 중요했었고, 우리가 자식에게 얼마나 평등과 사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잊었느냐며... 매트는 존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진지한 토론 끝에 모든 일들은 두 사람의 결정에 맡기기로 합니다.

이래서 예전 어른들이 자식 있는 사람들은 남일에 욕하지 말라고 했나봅니다. '절대로' '다시는' '결코' 이런 표현도 함부로 쓸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내가 누군가를 '초대하기 싫은'상황만 생각하지 내가 누군가에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될거라고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소신도 움직일 여지가 있습니다. 소신을 지키는 것, 소신대로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태도지만, 그 소신이 누군가의 행복, 사랑, 평화 등과 충돌한다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고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은 더욱 가치있는 일 아닐까요? 언젠가, 내가 소리높여 주장하던 소신이 정말 내 일이 될지도 모를, 그래서 지키기가 너무 힘들어질지도 모를 상황을 위해서라도 생각에 여유를 주면 어떨까요.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생방송 오늘, 이상호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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