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컴퓨터를 켠다. 매년 패잔병으로 전락한 채 끝나버린 설날 기차표 예매 전쟁. 이번엔 승리의 깃발 아니, 기차표 한 장을 기필코 움켜주리라. 59분 00초, 59분 30초…전장에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 박동은 점점 커진다.
설 명절을 3주 앞둔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코레일이 진행한 ‘2016년 설 명절 열차 승차권 예매’가 마무리됐다. 인터넷 이용자 폭주로 인한 서버 마비, 역사 대합실의 끝이 보이지 않는 대기줄 등 전쟁을 방불케 하는 설날 승차권 예매 현장. 서울경제신문의 디지털브랜드 서울경제썸이 그 전장에 ‘참전’했다.
△ 클릭하자마자 대기자 6만명...로맨틱하지도, 성공적이지도 못했던 인터넷 예매
경부선 예매가 진행된 19일 새벽 5시 50분. 평소보다 1시간이나 먼저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터넷을 통한 기차표 예매가 시작되기까지 10분이 남았다. 먼저 코레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부터 재빠르게 확인해둔다. 원하는 열차 시간과 차량 번호도 숙지해놨다. 예약을 위해 코레일이 허락한 시간은 단 3분. 원하는 기차를 골라 예매만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니, 부가 정보는 미리미리 챙겨두는 게 좋다.
오전 6시 정각. 설 연휴 예매 전용 인터넷 창구가 열렸다. 개시 시각, 그 찰나의 순간을 붙잡기 위해 수십 초 전부터 새로고침과 입장하기를 반복했던 터. 그러나 클릭과 동시에 보이는 숫자는 절망감만 안겼다. ‘예약 대기인수 6만명’. 이어 보이는 익숙한 메시지,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 연휴 첫째날 하행선, 연휴 중·후반의 상행선 등 이른바 ‘꿀자리’들은 이미 남의 차지가 됐다.
대기인수 6만이 ‘0’이 될 때까지의 대책없는 시간을 견디는 일이 남았다. 예매가 시작된 지 74분이 지난 오전 7시 14분, 겨우 기차표 한 장을 예약할 수 있었다. 연휴 첫날 오후 KTX의 꿀자리를 감히 꿈꿨으나 내 손에 들어온 건 설날 당일 새벽의 무궁화호였다. 또 다시 ‘절반만의 성공’. 힘 없이 컴퓨터 화면을 껐다.
△최강 한파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끝도 없는 대기 행렬
오전 9시엔 서울역을 찾았다. 전국의 모든 역 및 대리점 등 총 600여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 현장 예매를 지켜보기 위해서다. 매표소 현장은 귀성객의 대기 행렬로 새벽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경북 지역에 한파 경보 및 주의보가 발효되는 등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였던 이날.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두툼한 점퍼로 무장한 채 돗자리를 깔고 쪽잠을 자는 이들이 대합실 바닥을 가득 채웠다. 이 자리에서 만난 김응준(70)씨는 “제일 첫 줄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어제 오전 11시부터 와 있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예매 두 시간 전인 오전 7시. 행렬은 코레일이 미리 설치해둔 파란색 대기 라인의 반 이상을 채웠다. 예매 시작 한 시간을 남겨둔 시점엔 가장 끝 대기열까지 빼곡히 줄이 들어서는 등 대합실은 몇 장 남지 않은 기차표를 구하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박희철(79)씨는 “우리 같이 나이가 먹은 사람들은 온라인 예약이 어려워 현장 예매를 할 수밖에 없다”며 “번호표를 나눠주든지 해서 마냥 서서 기다리게 하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레일, “더 편하게 기차표 구하는 방법 개발할 것”
19·20일 이틀 동안 코레일이 공급한 설날 연휴 기차표 물량은 총 191만 7,000여석. 이 가운데 70%(133만9,000석)가 인터넷으로, 30%(57만8,000석)는 현장에서 풀렸다. 이번에 공급된 물량은 당초 계획(190만9,000여석)에 비해 1만 8,000여석 정도 늘어난 수준. 매년 계속되는 물량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이나 수천만명에 달하는 귀성객 수를 감안하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익명을 요구한 코레일 관계자는 “열차는 시간대별로 운영되는 신호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차량 배치를 무한정 늘릴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진행된 경부선 예매의 경우 준비 물량의 58.3%가 판매됐다. 인터넷의 예매율은 67.8%, 창구 예매의 경우 36.2%의 물량이 소진됐다. 이날 판매가 이뤄지지 않은 물량은 연휴 초반의 하행선, 연휴 후반의 상행선 등 사실상 귀성객들에겐 필요가 없는 것들이거나 새벽 시간대의 무궁화호 등이 대부분이다. 이미 팔릴 표는 다 팔렸다는 의미다. 코레일 측은 이번 예매 기간 동안 판매가 이뤄지지 않은 잔여석을 21일 오전 10시부터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오주헌 코레일 역무팀장은 “현재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이나 자동 발매기에선 명절 기차표 예매가 안 되고 있다”며 “창구나 인터넷 외 예매 시스템을 더 강화해 더욱 편리하게 기차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유병온기자 rocinante@sed.co.kr 이종호기자 phillies@sed.co.kr 정수현기자 movingsho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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