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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검은 튤립


1637년 1월까지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황금보다 비싼 '신의 꽃'이었다. 튤립 한 뿌리만 있으면 살찐 소 4마리, 밀 27톤을 살 수 있었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에 투자자들은 열광했다. 집과 토지를 파는 것도 모자라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 튤립을 사들였다. 그런데 그해 2월 갑자기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환상에서 깨어난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넉 달 만에 가격이 95%나 떨어졌고 파산자가 넘쳐났다. 네덜란드 정부는 매매가격의 3.5%만 지급하면 모든 채권과 채무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비상수단을 동원해 겨우 사태를 진정시켰지만 이미 국민과 국가는 거덜 난 뒤였다.

역사상 최악의 투기로 기록된 '튤립 버블'. 이 광기를 키운 것은 품종개량이었다. 더 화려하고 더 귀한 것을 만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갖가지 시도가 등장했다. '셈페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라는 최고급 개량품종은 지금 우리 돈으로 약 6억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품종개량 시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불가능의 영역인 '검은 튤립'으로까지 넘어갔다. 검은색을 가지려면 가시광선의 모든 파장을 흡수해야 하지만 그런 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검은색처럼 보이는 갈색이 있을 뿐이다. 검은 튤립을 만들기만 한다면 거액을 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튤립 버블을 다룬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에서 검은 튤립에 거액의 상금이 걸린 것도, 오늘까지 현실에는 없는 완벽한 꽃에 대한 시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달러를 둘러싸고 중국 및 홍콩 당국과 국제 핫머니의 전쟁이 치열하다. 홍콩의 달러 페그제는 핫머니의 입장에서는 현실과 괴리된 '검은 튤립'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의 사태는 홍콩 시장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력과 시장 권력의 한 치의 양보 없는 대결이다. 홍콩 당국이 '검은 튤립'을 지켜낼지 핫머니의 공세에 굴복할지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단지 불똥이 우리에게 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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