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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책의 후유증은 시차를 두고 반복돼 나타난다. 보육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은 1년 전 인천 어린이집 유아 폭행 사건으로 겪은 '보육 쇼크'의 연장선상에 있다. 두 사건이 표면적으로는 어린이집 난립 문제와 무상보육 예산 편성 파행이라는 다른 원인을 갖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들어가 보면 지나치게 시설이용 보육에만 무게중심을 둔 채 유아복지와 저출산 문제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은 정책 폐해라는 공통분모에 다다르게 된다.
여전히 전업·맞벌이 상관없이 영유아를 보육시설에 맡겨 지원받는 보육비가 가정에서만 키우는 부모에게 주는 수당보다 최대 4배나 많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손해 회피 심리가 발동한다. 가정에서 충분히 키울 수 있는데도 0~2세 영아들까지 어린이집에 맡긴다. 이미 우리나라 0~2세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 수준에 달한다. 이 아이들이 커갈수록 보육시설에 의탁하는 수요는 더욱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금 3~5세 누리과정의 파행도 일찌감치 예견됐다.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표를 의식한 무리한 공약으로 여당 내에서조차 걱정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마치 '5세까지 아이를 나라가 봐준다'는 식의 잘못된 시그널을 젊은 부모들에게 각인시켰다. 일하는 여성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심리적인 도움을 줬을지언정 정작 아이들에 대한 복지는 내팽개쳐지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떠한 철학이나 정책 도구도 없었다. 보육시설 이용을 지원해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고 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하루하루 맞벌이 생활에 지친 부모들이 현재 자녀도 충분히 돌볼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서 둘째·셋째를 가질 계획을 언감생심 품을 수 있을까. 정서 교육상 가정 내 돌봄이 꼭 필요한 어린아이들이 여기저기 낯선 손에 끌려다니고 불확실한 미래가 걱정돼 직장으로 달려가는 맞벌이 부모들은 보육시설에 매달리는 현상만 심화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시설이용 보육에만 몰두하는 것은 과거 국가 주도 산업화 시대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정과 부모의 역할·책임이 중시되는 보육 정책이 탈(脫)산업화 시대에 더 걸맞다. 가정에서 양육하는 부모에 대한 지원이 늘수록 현재의 무상보육 부작용은 줄어들고 저출산 문제 해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걱정스럽게도 지난해 말 정부는 별다른 대책 없이 총선 이후인 올 하반기부터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제한하기로 했다.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포기한 비(非)자발적 전업 맘들의 원성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이래저래 보육 쇼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h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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