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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떴다 보아라’ F-16





1974년 2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에드워드 공군기지. 하얀색 바탕에 군청색 동체 상부, 빨강 수평·수직 날개를 단 전투기가 하늘을 솟아 올랐다. 실험기 YF-16는 90분간의 비행을 성공리에 마쳤다. 서방 세계의 베스트셀러 전투기, 1980년대 이후 동서 양 진영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전투기인 F-16 시리즈가 이렇게 첫 선을 보였다.*

누적 생산 대수 4,676대(주문 63대 포함). 경이적인 기록이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이 생산된 기체도 적지 않다. 제트전투기가 등장한 이래 구 소련이 개발한 Mig(미그)-15·17·21전투기는 각각 1만 대 이상 생산됐다. (Mig-19기는 50년대 모델치고는 생산량이 의외로 적다. 2,172대) 자유 진영에서도 F-16이 넘지 못할 기록을 갖고 있는 전투기가 두 기종 있다. F-86F(9,869대)과 F-4팬텀(5,195대). 둘 다 미국제다.

F-16 시리즈의 생산량이 독보적인 이유는 전투기를 ‘과자 찍어내듯’ 생산하던 이전 시대와 달리 ‘소량· 고가 시대’에 달성된 기록이기 때문. 1970년대에 설계돼 1980년대부터 전력화한 기체 가운데 생산량 1,000대를 넘는 전투기도 F/A-18(1,480대), Mig-29(1,600대 이상) 정도에 불과하다.

누적 판매 가격으로 따지면 어느 기체도 따라오지 못한다. 당연하다. 가격이 F-86F(22만 달러), F-4(240만 달러)보다는 최소한 3~100배 이상 비싸니까. 주목할 대목은 초도 비행으로부터 4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생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은 내년 말까지는 생산 라인을 유지할 계획이다. 이쯤 되면 초장기 베스트셀러 전투기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정작 미군은 초도형 F-16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 고가인 F-15의 성능에 만족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적정 전투기 보유 대수’를 충족할 수 없던 미 공군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안이 값싼 경량 전투기. 미 공군의 입찰 요구에 응한 5개 업체 중에 최종 후보로 남은 제너럴 다이나믹스사의 YF-16과 노스롭사의 YF-17 두 기종 가운데 결국 YF-16이 승리했지만 처음에는 미운 오리새끼로 취급받았다.**

시제기를 의미하는 ‘Y’자를 떼어내고 본격 생산을 시작한 F-16은 예상대로 성능이 F-15보다 한참 뒤졌다. 가격도 뛰었다. 애초에 300만 달러 이하로 책정했었으나 두 배, 세 배로 치솟았다. 신기한 현상은 가격 상승에도 미 공군의 구매 대수는 늘어났다는 점. 약 700여대를 구입할 예정이던 미 공군은 계획 물량의 3.4배나 사들였다. 저강도 분쟁이 많아진데다 지속적인 개량으로 성능이 향상된 덕분이다.

날로 진화한 F-16의 최종 진화형으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된 기체는 대당 5,500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제너럴 다이나믹스의 항공부문을 1993년 사들인 록히드 마틴이 최근 제시한 F-16 V형의 가격은 이보다 더 비싸다.

F-16은 해외생산분이 많다는 점도 특징. 미국과 공동개발에 참여한 유럽 4개국에서 최종 조립공장을 유치한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합쳐서 348대를 뽑았다. 터키도 308대(이집트 공군용 76대 포함)를 제작했다. 우리나라는 삼성항공과 그 후신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1차 120대, 2차 20대 등 140대를 면허생산 방식으로 만들었다.



한국공군은 국내 생산한 KF-16과 미국에서 직도입한 F-16(블록 30) 40대를 합쳐 180대를 도입했으나 운용 기체는 모두 169대. 한국은 미국과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에 이어 다섯 번째 F-16 운용국이지만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끊임없이 개량해온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등과 달리 도입할 당시 그대로 기체를 유지해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두 번째, 관련 기술 축적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유럽과 이스라엘은 그렇다 쳐도 터키까지 무장 관련 소프트웨어의 언어체계(software source codes)를 제공하면서도 한국에는 막아놓은 탓에 독자적으로 개량할 수 없다. KF-16을 면허 생산하면서 축적한 경험으로 ‘국내 개발’한 T-50 초음속기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기술을 제공한 미국 측이 소스코드를 공개하지 않아 말로만 국산일 뿐 개량조차 마음대로 할 권한이 우리에게 없다.

초도 비행한 지 42년 지난 전투기에다 몇 년 뒤면 신규 생산이 종료되더라도 F-16 시리즈가 제작사 록히드 마틴에게는 여전히 효자 품목으로 남게 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천 기술. 각국 공군의 업그레이드 수요가 여전히 대기 중이기에 일감은 충분하다. 한국 공군도 2조 8,000여억원을 들여 보유하고 있는 KF-16 134대를 전부 새로운 사양으로 개량할 계획이다

F-16 전투기가 걸어온 길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도 한국형 전투기사업(KF-X)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7년 반이 지나 2022년 7월을 맞으면 계획대로 KF-X가 초도 비행을 선보일 수 있을까. 일정은 촉박하고 예산은 부족하며 장애물은 도처에 깔렸다. F-16의 사례로 보자면 한번 개발하면 40년 이상 써먹어야 하는데 첫 비행 이후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진행시킬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KF-X 사업의 규모는 작더라도 F-16 시리즈가 거둔 성공의 일부라도 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첫 시험 비행이 1974년 1월 20일 실시됐다는 자료도 있다. 맞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만 맞다. 지상에서 최고속도 시험 중 기체가 흔들리며 파손될 위기를 맞자 테스트 파일럿이 기체 보호를 위해 순간적으로 이륙해 6분간 비행한 것이 전부이기에 공식적인 첫 비행은 2월 2일을 꼽는다. 의도하지 않는 우발적 처녀비행(unexpected accidental maiden flight)이었던 1월 20일의 비행은 역설적으로 YF-16이 작지만 위험 상황을 만났을 때 기민한 대처가 가능한 기체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YF-16에게 고배를 마신 노스롭사의 YF-17도 사라지지 않았다. 미 해군에서 관심을 가진 덕분에 함재용 F-18 전투기 시리즈의 원형기가 됐다. 한국 공군이 다수 보유한 F-5기를 기반으로 설계된 YF-17은 노스롭사과 맥도널 더글러스, 보잉 등 사업자가 바뀌면서도 F-18, 슈퍼 F-18로 이어지는 진화의 단계를 밟아왔다. 흥미로운 대목은 한국과의 관계. 노태우 대통령 시절 공군의 차기 주력전투기로 F-18을 선정했다가 가격 문제로 F-16으로 번복하는 굴절을 겪었다. (KF-16이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YF-18의 최종형이라고 할 수 있는 수퍼 호넷(F-18 E/F)은 F-18을 확대 개량한 기체로, 이를 개조 개발해 KF-X의 기체로 삼자는 논의도 나왔던 적이 있다. 한국과는 물고 물리는 인연을 맺어온 셈인데 그 흔적은 공군이 마르고 닳도록 써먹을 수밖에 없는 F-5 전투기에 남아 있다. 한국 공군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F-16 전투기는 이복 형제들도 있다. 록히드 마틴(제너럴 다이나믹스)과 제휴한 외국의 항공사들이 F-16과 비슷한 전투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대만의 F-CK-1 징궈(經國) 전투기나 우리나라 KAI의 T-50 시리즈는 해외에서 F-16의 다운 그레이드 형식으로 간주된다. 일본의 F-2 전투기는 F-16의 소폭 확대형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J-10 전투기도 실은 이스라엘이 F-16을 모방해 제작했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생산을 포기한 랍비 전투기에서 기술을 이전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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