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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2월 치러진 미 아이오와주(州)의 공화당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대이변이 연출됐다.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34%의 높은 지지율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압승을 거둔 것이다. 당시 매스컴은 예비 후보 꼴찌였던 허커비의 약진에 대해 아이오와에 포진한 복음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허커비는 곧바로 열린 뉴햄프셔 선거에서 3위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미국 대선, 그것도 아이오와주에서 보수주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차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준 셈이다.
1일(현지시간) 열린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과 달리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 패해 2위로 밀려나는 이변이 빚어졌다. 파격 행보로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트럼프로서는 세게 얻어맞은 꼴이다. 트럼프가 낙태와 동성결혼에 찬성하면서 기독교 복음주의자와 보수 강경세력인 티파티의 외면을 받았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치 신인이 출사표를 던진 지 7개월 만에 본선 무대에서 2위로 뛰어오른 것은 이른바 '아웃사이더의 반란'에 대한 유권자의 폭넓은 지지를 입증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기득권에 얽매인 워싱턴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나 불만이 생각보다 훨씬 뿌리 깊다는 방증이다.
빈부격차 확대 등으로 기성 정당이 궁지에 몰린 곳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영국 노동당은 강성 좌파인 제러미 코빈 당수가 장악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이 지방선거에서 1위를 차지하는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다문화 국가인 스웨덴에서도 이민자 배척을 내건 정당이 여론 조사에서 30%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주류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유권자의 거센 분노와 저항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4월 총선과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말 없는 다수가 투표장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정치인들이라면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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