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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BOJ)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꺼내 든 '마이너스 금리' 처방의 부작용이 예상보다 빠르게 금융시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BOJ의 금리 인하 이후 '반짝' 급등한 일본 닛케이평균지수와 엔·달러 환율(엔화 약세)은 불과 3거래일 만인 3일 도쿄 시장에서 급락세로 돌아섰다. 금리 하락으로 국채에서도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되자 일본 정부가 급기야 개인에 대한 10년물 국채 판매를 처음으로 중단하는 등 채권 시장의 왜곡현상도 가시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파장이 일본 시장에 국한되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BOJ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경기부양을 유도하는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글로벌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라는 불안감만 불러일으키면서 일본의 시장불안을 아시아와 세계 시장으로 전이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전날보다 달러당 1엔 이상 올라 다시 119엔대에 진입했다. BOJ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도입 당일 달러당 118엔대에서 장중 121.68엔으로 급락한 엔화 가치는 이날 119엔대 중반까지 오르며 BOJ의 추가 완화 정책이 끌어내린 낙폭의 절반 이상을 되돌려 놓았다. 도쿄 증시의 닛케이지수는 이날 장중 670엔가량 폭락하며 1만7,000선을 위협하다가 전날보다 3.15% 빠진 1만7,191.25에 거래를 마쳤다. 질적·양적 금융완화에 더해 마이너스 금리로 엔화 약세를 유도하고 증시와 물가를 끌어올리려던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의 노림수가 초반부터 어긋난 셈이다.
이날 증시 약세의 주요인은 2일(현지시간) 뉴욕 시장에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추락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증시의 낙폭이 유독 컸던 데는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부닷컴증권의 가와이 다쓰노리 투자전략가는 "이제 시장이 마이너스 금리의 부작용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며 "지난 2거래일 동안 증시가 급등한 것이 오히려 과잉반응이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마이너스 금리의 후폭풍은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재무성이 오는 3월 개인이나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발행할 예정이던 10년물 국채 모집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져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도 오히려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수요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채권 발행도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이날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장중 사상 최저치인 0.045%를 기록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직격탄을 맞는 은행들의 부담이 커지면서 일반예금 시장에도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이날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BOJ의 마이너스 금리에 대응해 대기업들이 예치하는 보통예금에 수수료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자금운용이 어려워진 일본 은행들이 해외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관측 속에 일본 금융기관들의 달러화 조달비용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무엇보다 BOJ가 완화 정책의 패러다임을 양적완화에서 마이너스 금리로 전환한 데 대한 투자자들의 심리적 불안이 적지 않다. 뉴질랜드 ANZ은행의 마크 스미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아시아 증시 약세에 대해 "지난주 BOJ의 정책 결정 이후 시장에서는 유가 폭락이 초래한 디플레이션 리스크를 중앙은행들의 타개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피터 오펜하이머 수석 전략가도 블룸버그에 "시장은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며 "중앙은행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지만 투자자들은 중앙은행들이 다급한 추가 조치를 내놓는 상황이야말로 그만큼 부진한 경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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