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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의 저주'라는 속설이 있다. tvN의 '응답하라 1997'·'응답하라 1994' 등 '응답 시리즈'가 케이블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쓰는 등 커다란 주목을 받았음에도 출연 배우들이 후속작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을 이른다. 그런데 응답하라의 저주가 천재 바둑 기사 최택 역의 박보검(23·사진)의 미소 앞에서 이미 풀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이)' 박보검을 만났다. 말간 얼굴, 순수한 미소, 선한 눈빛 그리고 예의 바른 태도가 '응답하라 1988' 속 택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얘기 나누다 보니 우리가 알던 그 얼떠 보이는 택이가 아니다. 이 친구 명랑·발랄하면서도 논리 정연하고 풍기는 내공이 예사롭지 않다. 그 묘하고 사랑스러운 택이 캐릭터를 완벽 소화해낸 것은 '우연히 온 행운'이 아니었다. "대본을 받으면 늘 이전 상황과 캐릭터의 심리에 대해서 상상을 해요. 이전에 어떤 심리였고 상황이었는지 분석하고 상상해야 현재 모습이 잘 표현되거든요."
주어진 캐릭터를 상상하고 연습하기를 반복하면서 극중 분신인 페르소나(persona)에 최대한 근접하려고 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세상사에 찌든 마음과 얼어붙은 심장도 녹일 것 같은 박보검의 선하고 순수한 미소는 타고 난 것이겠지만 아버지와 미래의 아내 덕선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노력과 진정성이 담긴 진심어린 연기였고 이에 대중들은 힐링됐다.
"인기가 짧더라도 신경 안 쓸 거에요. 사랑받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거거든요. 제 이름이 보배 보(寶)에 칼 검(劍)자를 써요. '때가 되면 귀하게 쓰인다'라는 의미에요. 열심히 노력하면 제가 귀하게 쓰일 때가 오고 또 올 거라고 믿거든요."
워낙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이라 자연스레 극중 스토리로 빠져들었다. 여주인공 덕선의 남편 얘기다. 극 중반까지도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추측이 우세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택이가 덕선의 남편이 되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이 급격히 늘었다. 그 열망이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어남택'이었을까. "'어쩌다' 남편이 택이 '어남택' 같아요.(웃음) 남편이 저라는 건 현대신 찍는 이미연·김주혁 선배님과 대본이 바뀌면서 알게 됐어요, 저는 류준열 형이 남편인 줄 알았고 신원호 피디님께서도 남편이 되는 배우가 주인공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남편이 안됐더라도 섭섭하지 않았을 거에요. 출연했다는 것만으로 커다란 행복이었고 행운이었어요."
이동하는 데 가장 빨라서 지하철을 애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봤다는 목격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는 걸 자주 봤다. 덕선과의 첫 키스신에서는 남자가 먼저 리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재잘 늘어놓는 막내 남동생 같은 박보검. 그 누구라도 귀여워하고 흐뭇해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기자는 이제 배우 박보검의 팬클럽 '보검복지부' 회원이 될지도 모르겠다.
/연승기자 yeonvic@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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