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Sex). 우리나라의 공적 담론 공간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돼온 이 단어가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선 성(性)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그만큼 더 과감해졌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성,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가장 발 빠르게 간파한 곳은 바로 기업들이다. 최근 콘돔 업체들은 단순히 성 관련 제품·판매를 넘어 대한민국의 대안적 성문화를 제시하는 사회적 캠페인 등을 내놓으며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 2030에게 성을 묻다.
콘돔 업체인 ‘바른생각’과 오픈서베이, 사단법인 푸른아우성이 최근 2030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 인식 관련 보고서, ‘2015 SEXSURVEY’를 살펴보자. 과거 금과옥조처럼 여겨졌던 ‘혼전순결’에 대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답한 이들이 무려 71.4%에 달했다. 첫 성경험의 시기는 남녀 모두 20대 초반인 것으로 조사됐고, 10대 때 경험을 했다는 이들도 18.3%나 됐다. 이제 젊은층들에게 성은 놀이만큼 즐겁고, 자연스러운 게 됐다.
△ 지갑 속 케케묵은 ‘콘돔’, 세상 밖으로 나오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는 미디어를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다. JTBC의 ‘마녀사냥’ 등 성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 과거 금단의 영역이었던 성이슈에 대해 한 유명 여성 연예인이 TV에 나와 “(콘돔은) 지갑 속에 케케묵은 거 말고 신선한 걸로 쓰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성 상품 업체들도 이에 발맞춰 지갑 속에 묶여 있던 자사 브랜드를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영국 출신의 글로벌 콘돔 브랜드인 ‘듀렉스’는 국내 유명 웹툰을 활용해 자사 상품 홍보에 나서고 있다. 올 1월부터 인기 웹툰 작가 ‘피터몬’과 함께 건강하고 열린 성문화를 조성하고 올바른 성(姓) 인식 확산을 위한 총 12편의 웹툰, ‘잉어왕의 2030 남자 리얼라이프’를 연재에 나선 것. 듀렉스의 마케팅 담당 최민휘 차장은 “다양한 성 관련 에피소드를 통해 맞춤형 성 지식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건강한 성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목적”이라며 “웹툰 외에도 ‘청년들을 위한 안전한 섹스 캠페인’, ‘콘돔 이모티콘 캠페인’ 등을 통해 한국의 건전하고 열린 성문화 정착을 위해 앞장서고자 한다”고 말했다.
콘돔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젊은 층의 다른 소비 문화를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2030세대가 자주 가는 술집과 함께 ‘술+콘돔’ 이벤트를 진행한 국내 콘돔 업체 ‘바른생각’이 대표적인 예. 회사 측은 “개방적인 성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층에 어필하기 위해 한 맥주 가게와 함께 특정 맥주 구매시 콘돔을 덤으로 주는 마케팅을 진행한 바 있다”며 “요샌 의류·식품 등의 업체에서도 콜라보(협업)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후발 콘돔 업체인 인스팅터스는 지난해 12월 업계 최초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콘돔 무료 캠페인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이 업체의 성민현 대표는 “최근 성을 접하는 연령이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가장 보편적인 피임기구인 콘돔을 청소년들이 쉽게 구매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한 문제가 낙태나 미혼모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해 캠페인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성 대표는 “성에 솔직하고 당당한 2030 소비자 니즈에 맞춰 상품 출시 전 길거리에서 청소년을 포함한 성인들에게 무료로 콘돔을 배포하는 등 색다른 마케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에 거침 없는 2030세대, 현실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
갈수록 개방화되는 성문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는 자본의 움직임과 달리 이에 대한 의식적·교육적 뒷받침은 여전히 미진한 형편이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 70% 이상이 피임을 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는다고 답했고, 피임을 하지 않은 원인으론 응답자의 48%(복수응답)가 ‘성감 저해’를, 36.6%는 ‘피임에 큰 문제가 없다’, 27.6%가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성행위에 있어선 적극적이지만,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에 있어선 소극적이거나 도외시하는 행태가 여전한 셈이다.
특히 청소년기에 이뤄지는 성교육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채 구태의연한 방식에 머물면서 2030세대에 잘못된 성 인식을 주입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39.2%가 과거에 받은 성교육이 현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장은 “최근 각종 IT기기들이 발달로 성 관련 불법 유해물이 범람하고 있어 어린 아이들이 이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며 “반면 실제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성교육방식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가람기자 garam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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