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시간 홈쇼핑 방송에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놓칠새라 신용카드를 긁어 새 옷을 사고, 답장이 늦는 친구에게 왜 이메일 안보내냐고 다그치고… 조급하고 충동적인 우리의 자화상이다. 새 운동화를 사기 위해 돼지저금통을 채우고 친구가 보낸 편지를 기다리며 우체통 앞을 서성였던 우리네는 어디로 간 것일까. 청년실업·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은 각박해지는 우리의 이런 심성때문은 아닐까.
'석유의 종말'·'식량의 종말' 등에서 명쾌한 분석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세계 독자들을 사로 잡았던 폴 로버츠. 그는 '근시사회'를 통해 현대인들이 왜 막대한 가계부채와 각종 중독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지, 기업활동을 가능하게 하던 주식시장이 어떻게 시장경제를 좀먹고 있는지, 또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망치는지 고발하는 동시에 이를 막을 대안들을 제시한다.
저자는 '충동적인 인간'이 된 이유를 산업 생산량의 증가에 따른 소비자 경제의 발전, 나르시시즘이 판치는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요약되는 디지털 혁명 등에서 찾는다. 인터넷 서핑을 할 때마다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광고가 따라 붙고 역시 클릭 한 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효율적인 세상이지만 오히려 개인의 선택 폭은 그리 넓지 않으며 충동적으로 소비를 하게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저자는 결국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게 된 디지털 혁명에 대한 '순진한' 낙관도 기업가들의 맹목적인 근시안성에서 왔다고 본다. 디지털 혁명은 현재의 산업구조를 뒤집을 만큼 뚜렷한 혁신도 이루지 못한 채 단순 노동은 물론 기자나 변호사처럼 고도의 정신노동을 요구하는 영역의 일자리마저 빼앗고 있다. 또 대기업들은 연구 개발 투자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거듭하는 바람에 혁신의 동력을 잃었다.
그렇다면 기업가들은 왜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됐을까? 문제의 열쇠를 저자는 주주 자본주의에서 찾았다. 자신이 주주이거나 주주 이익의 대변자가 된 최고경영자(CEO)들은 어떤 장기적인 계획도 세울 수 없다. 실제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운영하기로 유명한 구글이 지난 2011년 1,900명 정도를 새로 고용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주가가 20% 이상 폭락했다. 기업 활동을 보조하는 수단이었던 주식시장이 시장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한 것.
정치권도 근시안성으로 몸살을 앓은 지 오래다. 정치인들은 선거공약을 세울 때 실현 가능성 보다는 화제성에 집중한다. 또 그들은 극단적이고 수위 높은 발언으로 당과 부동층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하기 위해 노력한다. 유권자들도 장기적 관점에서 공공에게 유리한 정책보다는 현재 상태를 조금 나아지게 할 뿐인 정책에 혹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서서히 파괴하는 근시안적인 태도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 저자는 "충동사회를 지탱하는 개념, 즉 근시안적이고 자기 몰두적이며 파괴적인 지금의 현실이 한 사회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1만8,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