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영화 ‘검사외전’의 관객 수가 끝내 800만을 넘어섰다. 기세는 여전해 1,000만 돌파까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2016년 첫 천만 한국영화의 탄생을 앞두고 기쁘기보다는 입맛이 쓰다. 흥행 가도에서 한국영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온갖 병폐와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때문이다.
첫째는 역시 스크린 독과점 문제다. 지난 3일 개봉한 ‘검사외전’의 스크린 수는 설날 연휴 하루 최대 1,806개까지 치솟았다. 전체 스크린 수(2,424개)의 약 75%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수치가 이 정도면 관객들은 정녕 ‘볼 영화가 검사외전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극장은 아쉽게도 특정 영화에 상영관을 몰아주는 무자비하고 이기적인 시장(market)의 얼굴을 선택했다. 시장이 대부분 효율적이긴 해도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관객은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고, 이런 상황을 경제학에선 ‘시장의 실패’라고 한다.
두 번째 문제는 한국영화 시장의 발전에 책임이 있는 대형 투자배급사들의 안일함이다. ‘검사외전’은 배우밖에 볼 게 없는 엉성한 오락영화였다. ‘성난 변호사’, ‘베테랑’, ‘치외법권’, ‘내부자들’ 등 영화를 보는 내내 불과 몇 개월 전 개봉한 아류작들이 줄줄이 머릿속을 스쳤다. 물론 이런 영화가 모두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지난해 최대 실적을 올렸다는 국내 4대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야심작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웬만한 시나리오는 대부분 다 거쳐 간다는 쇼박스에서 고르고 고른 이야기가 이거라니. ‘검사외전’에서는 적당한 이야기와 스타의 힘, 대기업의 마케팅 능력으로 설날 연휴 돈을 쉽게 벌어보겠다는 욕심밖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극장과 투자배급사는 이렇게 된 이유를 아마 관객들에게 돌리고 싶을 것이다. 관객의 선택이 문제라는 뜻이다. 하지만 관객의 책임을 묻기 전 시장 선도 기업들의 책임감과 배려를 먼저 요구하고 싶다. 극장 사업자들이 눈앞의 수익을 좇기보다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를 다양하게 공급하고, 그 결과 영화 애호가를 늘려가자는 장기 비전에 서로 공감한다면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점차 개선되지 않을까.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연간 선택·제작하는 수십 편의 영화 중 일부만이라도 흥행이 아닌 작품성·예술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언젠가는 한국영화의 발전이라는 결실을 보지 않을까.
지난해 영화 ‘대호’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최민식은 컴퓨터그래픽(CG) 기술에 확신이 없어 출연을 꺼리기도 했지만 결국 선택했다며 말하길 “그래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져야 경험이 쌓이고 CG도 발전한다. 만약 내가 지금 주류에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면 이런 시도를 하는 것도 나의 몫.”이라고 했다. 한 사람의 배우도 기꺼이 지려 하는 한국영화 발전에 대한 책임을 업계 핵심 기업들이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문화레저부=김경미기자 km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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