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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금속노조 등 산업별 노동조합의 지부·지회가 스스로 조직형태를 변경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앞으로 조합원들의 자율적인 노조선택권이 더 커지게 됐다. 지금까지는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조직전환이 쉬운 것과 달리 거꾸로 산별노조에서 기업별노조로 바꾸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급노조의 정치세력화에 염증을 느껴 이탈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노동계의 산별 단위 단결력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9일 고용노동부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옛 발레오만도)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회사 여건과 노조 상황에 따라 자체 판단으로 이탈이 가능한 '노조선택권'이다. 상급조직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의사결정이나 지나치게 강경투쟁만을 앞세울 경우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노조형태를 변경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송강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총에서 산별지도부 노선대로 획일화시키는 점, 산별노조와 기업별노조 사이의 이해관계 등으로 앞으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지부·지회에서 탈퇴하겠다는 현상이 상당히 많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전체 조합원 69만명의 80% 이상이 산별노조 소속인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 산별노조는 금속노조·전국공무원노조·전교조·보건의료산업노조·공공운수노조 등 23개에 이른다. 이로 인해 산별노조의 교섭력과 단결력이 크게 약해질 뿐 아니라 산별노조 운동을 기반으로 한 민주노총의 조직운영에도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당장 발레오만도지회 외에 다른 지회에서도 금속노조 탈퇴가 잇따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노동계 집행부의 무리한 정치투쟁에 대한 현장 근로자들의 거부감은 나날이 커져왔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정책에 반발해 번번이 총파업을 모토로 내걸었지만 투쟁동력이 떨어져 대부분 선언에 그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주로 정치적 이슈를 내세운 채 비정규직을 외면한 '귀족노조'라는 비판이 확산되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가입하지 않는 노조원이 지난 2014년 기준 43만1,000명(22.6%)으로 10년 동안 5배나 늘어난 점만 보더라도 현재 산별단위 중심의 강경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스스로 단결체를 선택할 권리가 부여됐기 때문에 앞으로 산별노조가 조직원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정치투쟁만 고집한다면 이탈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며 "앞으로의 노동운동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산별 체제가 미완의 단계인 우리 노동계의 실정을 고려한 측면도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산별노조는 금속·운수 등 동일한 산업군 내의 여러 기업 근로자를 조합원으로 하는 노조를 뜻한다. 반면 기업별노조는 개별 기업의 근로자로만 구성된 노조다. 산별노조는 노조의 자주성과 강력한 교섭력 등을 위해 199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설립됐다. 개별 회사는 산별노조의 한 지회로 가입하고 임금협상·단체협약 등의 교섭은 산업단위로 집단교섭을 진행한다. 덩치가 커지는 만큼 사측에 대한 교섭력은 물론 대정부 요구 등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하며 노조의 입장을 관철시켜왔지만 개별 회사와 연관되지 않은 정치파업·투쟁에 동원된다는 비판이 컸다.
특히 단체협약에서 임금협상까지 산별 체제가 안정적으로 확립된 독일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노동계의 경우 교섭권과 단체협약 효력 범위 등에서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사실상 개별 기업별 임단협 등이 진행되고 있어 산별노조에서 기업노조로 자유롭게 전환하도록 한 판결이 현실상황에 적합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익명의 한 노동 전문가는 "산별조직에서 기업단위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정치지향으로 슬로건화해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칫 강경파만 똘똘 뭉치는 경향이 향후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근로자들 간 노노갈등과 노조와해를 위한 사용자 개입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어렵게 성장시켜온 산별노조 운동의 토대를 허물고 산별노조 와해로 노동계의 근간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정원기자 garde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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